내년은 어떻게 살아야

by 이가연

시드니행 비행기표 취소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막상 취소하려하니,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항 왕복 80만원 비행기면 상당히 잘 끊은 것이기도 하다.


본다이 비치 총격 사고가 미치는 영향은 별로 되지 않는다. 처음 혼자 해외로 미국 LA도 갔다왔다. 한 번 총격 사고가 일어났으면 시드니는 당분간 안전할 것이다.. 영향을 미치는 건 올해 하반기 다녀온 여행들이다. 9월 영국, 11월 마카오 이후로 이제 진짜 혼자 여행은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영국은 오빠가 영국에 있는 시기를 맞춰서 가면 된다. 그럼 또 펍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올해 한 번도 못 만났다. 하지만 오빠는 5월은 되어야 영국에 있다고 한다. 난 당장 가고 싶지만 이제 크리스마스도 끝난 겨울이니까, 겨울 끝나는 즉시 3월에 가고 싶다만. 여름까지 내가 해외를 한 번도 안 나가고 버틸 수 있을까. 안 그럴 거 같다. 그래서 3월에 호주 갔다가, 여름에 영국 가면 딱이다. 원래도 영국 여름 캠프에 가고 싶어 했다. 혼자 여행하지 않고, 공부하러만 나간다고 했으니, 여름에 가서 오빠도 보고 공부도 하면 딱이다.


취소를 고려한 이유는, 12월 수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자꾸 나가려는 습성을 가라앉힐 수 있는 건 서울에서 재미나게 보내야하는데, 그러려면 돈이 든다. 12월 수입이 11월만 같았어도 시드니를 취소한다드니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전혀 없고, 지출 계획만 있다. 그러지 않으면 3월 전에도 해외 또 나갈 거 같기 때문이다. 충동적으로 해외 나가서 발만 아프다고 돌아오지 말고, 서울에서 즐겁게 보내야한다는 그 취지는 훌륭하다만, 문제는 수입이 거의 없다. 이번달 수입 중에 친할머니가 주신 용돈이 제일 비중이 크다.


그렇다면 답이 나왔다. 내년에 돈은 또 벌겠지. 내년에 어떻게 될지 누가 아나. 그리고 지금 3월에 시드니 혼자 가게 될 거라고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물론 이제 한 4일 정도 지나면 수수료가 너무 나와서 취소를 못 한다. 그뒤엔 '나 혼자 가기 싫다고!'하면서 취소할 순 없다.


2천만원 정도 있었는데, 벌써 올해 천만원은 날아갔다. 의미 있게 쓴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건, 정말 참고 참다가 사리 나올 쯤에 영국 갔다. 충분히 기절할 거 같았다. 물론 9월에 영국에 너무 길게 있었어서, 2주가 아니라 일주일이었으면 돈을 덜 쓰긴 했을 거다. 하지만 올해 두 번 영국 가는 걸 안 하는 건 절대 불가했다. 다음으로 컸던 지출은 앨범 발매인데, 앨범 발매는 늘 가치 있는 투자다.


이렇게 계속 살순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했다. 그 방안 마련이 어느 정도 잘 되었는데, 아직 베타 테스트 기간이라서 그렇다. 1월 캘린더를 보아하면, 불어 학원, 라이프 드로잉, 원데이 클래스로 벌써 차있다. 이렇게 1월은 지나야 안정이 될 거다. 그리고 지금 공연이 없어서 그렇다. 겨울은 처절한 비수기다.


영국 가려는 충동이 올해 이쯤 되면 잠잠해질 줄 알았다. 난 영국에 고작 8개월 살다 왔는데, 여파가 너무한 거 아니냐.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줄 알았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살았어야 한다. 영국에 더 있을 수 있던 걸 포기한 건 나에게 가장 가슴 아픈 후회라서, 그쪽으로 생각이 빠지지 않으려면 그냥 어떻게든 자주 가야 한다.


일년에 세 번은 가야겠다고 말했는데, 세 번 맞나. 네 번 아닌가. 노파심에 한 번 더 언급하자면, 다시 살고 싶진 않다. 영국 가서 일주일만 지나면 욕하기 시작한다. 일주일이어야만 한다.


이거.. 설마 창원 갔다오면 해결되나. 아니다. 그것도 임시 방편이다. 도대체 무슨 수를 써야, '또 영국 가려면 돈을 다 쓰면 안 되는데. 쓸데 없이 창원 가지 말고 돈 아껴야 하는데. 근데 또 막상 영국 가면 발만 아프고 힘들어하잖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수시로 인천-히드로 비행기를 검색하는 걸 멈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통장에 백만원 밖에 없었으면 난 어찌 살았을까. 그럼 현실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오히려 돈이 있으니까, 갈 수 있으니까 계속 비행기표 보고 괴로운 것일 수 있다.


한 해 마지막 날을 맞이하며, 내년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나 갑갑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본다.


- 시드니도 가고, 여름에 원래 게획대로 영국 음악 캠프 가고, 또 가고 싶으면 크리스마스 시즌에도 간다.

- 지금 여기 있는 것만으로 너무 좋고, 서울에서 행복하다.

- 단순히 즐겁기만 한 게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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