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살면 안 되는 이유

by 이가연

한국 싫다고 욕하는 시간 < 영국 살 때 욕하던 시간

그게 이유다.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볼까. 서울에서 웬만하면 버스 타기 싫어한다. 버스 기사들이 막 승질 내고 욕하던 것에 노이로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버스 탈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탔다. 그런데 런던 지하철역엔 화장실도 없다. 그래서 난 런던 갈 때면 언제 어디서 화장실 가야할지 계산하면서 다녀야 한다. 기분이고 나발이고 인간에게 가장 기초적인 욕구 문제다... 서점 화장실도, 슈퍼마켓 화장실도 영수증 있어야 들어간다고 적혀있는 걸 봤다.


지금 한국에서 대충 평범하게 살았으면, 영국에 다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도무지 포기할 수 없는 컨디션에 살고 있다.



아파트 지하 1층에 이마트와 갖가지 양말, 내복, 옷 파는 데도 있다. 식료품 구매는 엄마가 하기 때문에 내가 그래본 적은 없다만, 이마트 카트를 끌고 집까지 올라와서 카트를 그냥 집 문 앞에다 두면 된다. 그러면 하루 이내로 누군가가 수거해 간다. 여긴 39층짜리 아파트인데, 층층마다 확인하고 치우는 가보다.. 방금은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없다고, 티코 하나 달랑 사고 왔다. 티코 사는데도 엄마가 카드 줬다.


평소 집에 냉장고만 세 개라서 먹을 게 없을 리가 없다. 영국에선 Asda (이마트 비슷) 한 번 가려면 15분을 걸어가서, 무겁게 이고 와야 했다. 가도 어차피 살 거라곤 고기, 오렌지 주스, 치즈, 슬라이스 햄 수준이었다. 살 땐 맛있어보였는데, 데펴보니 도저히 못 먹겠는 음식 천지였다. 한국 이마트는 각종 맛난 음식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영국 슈퍼는 도대체 뭘 사야할지 모르겠었다. 우리 집은 배달음식 금지 구역이다. 정말 어쩌다 피자 정도 시킨다. 그런데도 전혀 문제 없다. 이마트에 파는 음식만으로도 평생 살겄다.


싫은 사람들 그냥 피해 살면 되지 영국에 다시 왜 사냐.


태어나 기억 나는 순간부터 집 화장실에 비데가 있었다. 비데 없는 건 할머니집에나 가야 경험했다. 영국은 잘사는 집도 비데가 없다.. 그게 디폴트다.. 그 나라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지금 집 화장실은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화장실 물내림 버튼도 안 누른다. 물 안 내려도 되는 것에 습관 되어서, 어디 호텔 가면 습관 그대로 나온다. 그냥 밖에서 볼 일 볼 때는 안 까먹는데, 호텔 방 화장실은 아무래도 집이랑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물 안 내리는 경우 다반사다. 그 뿐인가. 스킨, 로션, 선크림 등 필요한 물품 떨어질 걱정을 안 해도 된다. 영국 가기 전에도 1년 9개월 동안 자취했다. 그냥 본가에서 물건 쓰윽 가져오면 되었다.


영국을 다시 왜 사냐.


영국 살 때 병원 한 번 안 가봤다. 지금 집 근처에 '치과'만 검색해봤다. 어디가 아프든 바로 병원 갈 수 있다. 내가 다니는 정신과만 제외하고. 여긴 며칠에서 일주일 정도 대기가 필요하다. 근데 이건 여담인데.. 저렇게 많아서야 치과 차려도 안 망하나..? 요즘은 과잉진료하면 다 아는데.



영국 갈 때, 분노시 먹을 비상 약만 챙겨갔다. 우울증 약도 없고, 공황 증세는 아예 겪어본 적도 없으니 당연히 약도 없었다. 내가 살면서 또 뭔 증세가 나타날지 어찌 아나.


한국에서도 가장 인프라 좋은 강남에서 평생 살고, 다음 여의도 사는 중이다. 내가 어디 마산에서 왔으면 영국 살았겠다. 별 차이 안 나겠고로...


그래서 1년 반 전부터 말하고 있다. 한국은 편한 지옥, 영국은 불편한 천국이라고. 근데 그것도 다달이 용돈 받던 학생 때나 얘기다. 학생 때나 천국이었지, 내가 벌어 내가 쓰려하면 이제 거긴 불편한 지옥 된다. 원룸이 230-250만원 한다. 아.. 지금 60평대 공짜로 사는데..


누가 "그냥 영국 다시 살면 되잖아." 라는 말도 안 했는데 왜 이런 글을 쓸까. 과거엔 많이 들었다. 최근엔 안 들었는데? 내 안의 목소리 때문이다... 내가 지금 1억이 있었어도 한국 살까... 잘 모르겠다... 먹을 게 없으면 뷔페나 미슐랭 식당 가면 되고...


그래서 돈 많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다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그냥 한국에서 돈 많은 사람은 주위에서 접할 수가 있고, 외국에서 돈 많은 사람은 잘 못 봐서 아닌가. 직, 간접적으로 안 겪어봤으니까.


영국에선 벤치에서 샌드위치나 먹고 있었는데, 조깅하는 사람하고 눈 마주치곤 상대가 먼저 나에게 인사하고 갔다.


사실 한국 그냥 계속 역겹다. 역겨워 죽겠다.


영국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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