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불어 학원에 힘들게 잘 다녀왔다.
수업이 끝나고 프랑스인 선생님이 교재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셨다. 이 때다 싶어서 일단 자료 고맙다고 하고, 내가 ADHD가 있어서 중간에 막 나가거나 움직일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주 친절하게 답장이 왔다.
왜 그랬냐면, 아무리 봐도 1시간 반 동안 안 움직이고 앉아 있는 거 힘들다. 2시간쯤 넘어가니까, 어깨 아파서 주물주물하고, 대가리를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을 봤다. 읽어보라고 했는데 멍 때리고 있다가 당황했다. '내 수업이 재미없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나 같은 소심한 선생님은 학생 한 명 한 명 반응에 신경이 쓰이는데... 입장 바꿔서 생각했다. 나도 다 강사 해봤기 때문이다. 3시간 앉아 있느라 힘들었지만, 마지막엔 퀴즈도 하고 좋았다고 했다. 내가 강사라면, 그런 피드백해주는 거 고맙고 좋다. 그냥 책만 수업하면 머릿속에 계속 딴생각 들기 때문에, 그렇게 QR 코드 통해서 각자 핸드폰으로 퀴즈 답 누르게 하는 건 굉장히 좋은 방식이었다.
원래 외국어 공부는 원어민 회화 수업만 한다. 그런데 지금 불어는 초급 단계라, 어느 정도 문법을 익혀야 회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재미없어도 좀 참아야 한다. 그러는 ADHD인 너는 어떻게 대학원까지 졸업했냐고?
음악 전공이다. 내가 지금 대학원에 와있는지, 유치원에 와있는지 모를 정도로, 애기들이랑 무슨 음악 활동을 하면 좋을지 그런 거 했다. 동그랗게 큰 원을 만들어 앉아가지고, 초등학교 때 수건 돌리기 하는 것처럼 하기도 하고, 도무지 자리에 가만 앉아있지 않는 수업들이었다. ADHD인 내가, '아 왜 또 일어나라 하래. 귀찮게.' 싶을 정도였다.
오늘 그렇게 메일을 보낸 건 나에게도 참 큰 일이었다. 하지만 외국인이었기에 가능하다. 왜 나는 영국인도 아니고, 프랑스인 선생님한테는 그런 얘기를 그래도 할 수 있고, 한국인 선생님이라면 그런 얘기를 못할 거 같은가. 단순하다. 한국인들한테 이해를 받아본 데이터보다 상처를 받은 데이터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한국인 = 상처만 주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해가 바뀌면 바뀔수록 더 짙어졌다. 솔직히 좀 답이 없어 보인다. 안타깝다.
하지만 외국인은, 상처보다 이해받은 데이터가 훨씬 강한 거다. 데이터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참고로 매번 언급되는 오빠도 카톡 하지만 영국 국적이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자체가 사랑이다. 외국인들은 별로 사랑하지 않는데, 한국인들은 너무 사랑하다 보니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 상처다.
한국인들에게 이해받고 싶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고 싶다. 그건 한두 사람에게 이해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오빠도 어쨌거나 영국에서 나고 자라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도 또 생각난다. 내 브런치를 막 수십 편 보더니, 자기가 한국인이 다 그런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최근 1년 중에 제일 크게 트라우마 입혔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 안 나고 한 번 만난 낯선 이였지만, 최근 1년 중에 제일 컸다. 때때로 나의 그 '희망'이 '사람 보는 눈 없음'과 만나면 파국을 가져오곤 했다.
그래도 나는 나를 믿는다. 한 번 만난 낯선 이 따위는 충분히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잘 살아 버틸 거다.
학교 수업 중 영상이다. 학생마다 하나씩 붐웨커를 들고, 자기 거 나올 때마다 책상에 열라 때리는 거다. 재밌어서 한 손으론 붐웨커를, 한 손으론 핸드폰을 들고 찍었다. 음악 대학원 수업에선 이런 거 했다고 알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