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서 한 전문가가 '첫 데이트에서 지난 연애에서 무얼 배웠는지 물어봐라'하는 걸 봤다. 그랬더니 사람들 댓글은 가관이었다. 첫 데이트에서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그냥 아웃이라느니. 물론 저 말이 다소 면접 같은 건 인정한다. 그리고 나도 SNS를 줄여야 한다. 영상 보고 댓글 다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그냥 댓글 안 달고 지나간다. 댓글만 보고 '세상 사람들 다 저렇게 생각하나' 하는 그릇된 인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저렇게 질문하는 건 면접 같아서 나도 별로지만, 꼭 필요한 대화 주제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게 첫 만남이 부담스러우면, 두 번째 만남에서는 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원체 질문받는 것도, 질문하는 것도 매우 싫어해서 자연스러운 대화만 가능하다. 첫 만남에서 질문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90% 이상 사람들이랑 바로 대답하기 싫어해서 매우 곤란함을 겪고 있다. 나에게 질문하며 대화 시도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맛없는 음식을 씹은 것과 똑같이 된다. 그런 건 면접, 비즈니스만 가능하다.
내가 먼저 말이 많다. 내 말을 다 듣고 끄덕여주거나 거기에 대고 질문하라는 뜻에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방금 내가 말한 주제에 대해 본인 얘기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과거 연애 얘기를 했을 때, 똑같이 자신의 과거 얘기하는 사람이 과연 쉽게 있겠나. 그래서 자기 오픈 정도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오픈 정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너무 심하게 해서 이제 노이로제가 걸렸다.
과거 연애와 짝사랑 모두, 나랑 같은 점이라곤 한국인이란 거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직전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약속이 저녁이어도 힘들다. 매일 만나도 약속 시간이 오후 1시가 아니면 힘들다. 그런데 그건 상대방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남들이 5만 맞아도 연애한다면, 9는 맞아야 연애한다. 사람은 자신이 겪어본 만큼 세상이 보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나랑 근본적으로 비슷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직전 연애에서 분명 상대방은 나를 처음에 거절했다. 자기는 이제 결혼할 사람을 찾아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도 3년이 지난 올해 생일에 연락이 온 게 어이가 없다만. 결혼 안 하고 뭐 했냐 싶다.) 나는 영국 갈 예정에 있었기 때문에, 당장 좋으니까 어쩔 수 없단 식이었다. 장거리 연애는 내 사전에 없기 때문에, 무조건 헤어질 생각으로 한 고백이었다. (그게 이해가 안 된다면 ADHD 매거진 정주행을 부탁드립니다)
내가 나는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해야 할 거 같다고 말했더니, 그건 무슨 결혼 생각한 사람이면 모를까 하면서 나를 찼다.
그래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 아무리 봐도 그동안 연애에서 남자가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 다 내가 멱살 잡고 사귀자고 한 셈이었다. 정말 여자로 안 보이지 않는 이상, 그렇게 들이대면 일단 마지못해 사귀는 사람 쪽이 많은 것이다. 서로 마음의 크기가 비슷해야 된단 걸 배웠다. 둘째, 가치관이다. 직전 연애에서 한 달 사귀고, 헤어지는데만 한 달 걸렸다. 나를 밀어내면서 완전히 끊어주지를 않았다.
참 여러 핑계를 댔는데, 그중 하나가 가치관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한국인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사귀기도 전에, 이미 호모포비아 발언을 했다. 사귀는 도중에는, 남자들 열에 아홉은 성매매를 하는데 자긴 안 했다는 소리도 했다. 같은 남자를 그렇게 비하하고 싶나. 난 또 그걸 '그런가' 했다. 처음 한마디 들었을 때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내가 이런 생각하는 게 참 이상하다만, 나도 내가 강남에서 자랐다, 대치동 키즈다 하는 프라이드가 있단 걸 깨달았다. 예전에 서초동 사는 어른으로부터 '어디서 굴러먹은 놈인지도 모르는데'하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는데, 단순 학벌이 아니라 왜 교육 수준이 중요하고, 왜 집안이 중요한지 이 나이 먹고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고급스럽게 자라 가지고 왜 그런 여자고 남자고 어울렸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상위 1%로 자라 가지고, 하위 30%랑 어울린 느낌이랄까. (온실 속 화초 같단 말이 어이 없고 싫으면!!! 나랑 똑같은 환경, 똑같이 자란 사람들과 어울렸어야지. 내 스트레스의 근원은 나랑 너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산 탓이다.)
사실 답은 있다. 가족 관계가 안 좋으니 밖으로 나돈 거다. 나에 대한 싸구려 관심에 마음 쏟은 거다.
마지막은, 나다. 분노 조절 어려움이 그때도 당연히 매우 있었다. 3년 전이니, 나도 얼마나 미숙했겠나. 애초에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좋아하는 마음이 얕았다. 그걸 당시에만 모를 뿐이다. 당시에는 강렬한 감정에 취해서, 서로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착각이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솔로여도 상관없다, 내가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사람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데에는 이 마지막 이유가 있다. 내가 죽을 힘을 다해서 분노 조절이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가족이 아닌 이상 비상시 분노 조절 약을 먹지 않고, 그냥 말로 죽여버리기로 했다. 내가 폭발한데엔, 남들이 보기에 아무리 티끌만한 요인일지라도 다~~ 이유가 있다. 그런데 '가족 같은 사람'이면 내가 약을 먹을테다.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애초에 원가족과 다르게 분노 유발이 안 되는 사람이어야겠지만.
지난 연애뿐만 아니라, 지난 인간관계를 통틀어서 배운 점이 아주 많다. 핵심은 나랑 거울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단 것이다. 학벌이니, 키니, 경제적 수준이니, 외모니, 다 상관 없지만, 그 내면이 같아야 한다. 그건 가치관, 지적 수준, 지적 호기심, 학구열, 공감 능력, 동정심, 유머 감각 다 포함 된다. 그건 거울처럼 똑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현재로선 친구도 관심 없다. 그래서 다음 연애까지 10년 기다려도 상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