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약 없이 분노 가라앉히기

by 이가연

3년 전만해도 이 정도 분노에 바로 약을 먹었을텐데, 이젠 먹지 않는다. 순간 그걸 깨달았다. 그걸 깨닫는 순간 무한 감사가 퍼져나갔다. 비상 약 먹는 걸 누가 좋아할까. 어지간해선 안 먹고 싶다.


내가 문자로 와다다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이 나갔을 정도면 그것도 큰 분노다. 물론 가장 높은 단계는 아니지만. (참고 : 대학 강사에게 문자로 한 백번 욕해서 휴학 당한 적이 있다.)


이 정도면 정말 약을 먹었을 상태다. 상대에게 뭐라고 더 위협을 가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몸이 똑바로 된 상태가 아니다. 전신이 다 떨리고, 심장은 튀어나올 것 같다. 이미 너무 떨어서 타이핑도 오타 작렬이다.


오늘 약 생각이 안 났던 이유는, 분노 상태에서 오빠한테 음성 메시지로 와다다 다 말했다. 내가 말하는 목소리만 들으면, 그다지 화난 상태로 안 들릴 거다. 오히려 차분한 수준이다. 늘 그렇다. 내가 타이핑하는 문자에 담긴 정도만 보면 아주 불 지를 기세인데, 정작 목소리 내어 말하는 거 들으면 안 그렇다. 오빠는 내가 키보드 워리어인 걸 진작 알았다고 했다. 그거 아는 사람 지구 상에 오빠랑 과거 상담사 뿐이다.


오빠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면서 정리가 됐다. 내가 입을 열 때엔, 필사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뭘 테이킹해야할지 말한다. 지금 상황에서 얻어야할 교훈. 과거에 내가 백번 욕 보냈던 대학 강사랑 관상이 똑같았었다. 그 생각 했었는데도 내 직감을 무시했다. 그리고 뭔가 분위기가 편하지 못했다. 그 직감을 무시했다. 그래서 오빠랑 전부터 언급한 '직감 따르기'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했다. 오빠가 내 직감이 어지간하면 맞는 거 같다고 했다. 특히나 난 이 쪽으로 발달된 사람이다...


그리고는 타로 노트를 보면서, 이러이러한 카드를 진작 뽑았었는데 더 주의했었어야했다. 이 카드는 요즘 잘 안 맞으니까, 다른 카드들 쓰다가 돌아와야겠다. 등의 이야기를 술술 했다. 상대방을 욕하는 말은 잘 없다. 어차피 다신 안 봐도 될 사람이고, 그냥 스쳐지나가는 거고, 며칠 있으면 이름도 얼굴도 다 잊을 것이기에 관심이 없다. 그걸 알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내가 뭘 챙겨가면 될지에 대해 얘기했다. 사람들은 내가 분노의 타이핑을 하면, 대단히 그 사람이 싫고 욕하고 싶은 줄 안다. 공격하는 게 아니라, 자기 감정 표출하는 그냥 애다... 악의가 없다. 과거 상담사는 '그냥 서운한 걸 그렇게 분노로 가면 누가 아냐. 너가 그 욕 백개 보낸 강사에게 원했던 게 그냥 안아주길 바랐던 거 나도 알고 놀랬다.'라고 했다. 오빠는 진짜 사탕 하나 주면 화가 풀리는 애라고 했다.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 합쳐서 10분을 넘게 음성 메시지를 남겨도, 달달 떨고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 라이브를 켰다. 10분이 지나도 단골 분 중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으셔서, 채팅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껐다. 하지만 그렇게 라이브를 켜는 행동 자체가 나에게 안정과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마지막은 이 글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왔다. 약을 안 먹었는데도. 보통 약을 먹으면 30분에서 1시간 뒤에는, 어떠한 분노에도 진정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약 없이도 알아서 진정했다.


이렇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생기는 이 과정이 참 힘들다. 사람하고 아예 안 섞이려고 노력한 작년에야 이런 일이 적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만 하면 분노 발작이 생긴다. 이 땅에, 적이 참 많다. 나를 어이 없을 정도로 무례한 사람으로 기억할 사람들이, 안타깝게도 이 땅에 많다. 참 어이가 없을 정도로, 내가 다가가려고 노력한 한국인들만 생각하면 거의 다 화가 난다. 심한 애증이다.


그렇게 터트리고도 스스로 진정하는 것도, 며칠 뒤면 이름도 얼굴도 잊을 정도로 전혀 상관 없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하다. 안 터트린 것도 아니고, 당연히 존댓말로 말해야할 사람에게 반말로 와다다 하고 스스로 진정시키는 것조차 약 없이는 이렇게나 어렵다. 이게 내 ADHD 증상 중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고, 나머진 귀여운 수준이다.


나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면, 그건 약의 도움을 받아야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난 지금도 기적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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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왜 부어.. 그것도 이상한 거야..


한국 사람들은 내가 기분 나빴다고 하면 그걸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다. (어디까지나 내가 겪은 한국인, 외국인을 말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런데 내가 겪은 외국인은, 기분 나빴다고 하면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 있었겠냐. 나도 안다. 한국인들은 그걸 공격으로 받기 때문에, 일단 너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아, 걔가 한 번 있었다. 젠장!!!! 그건 다음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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