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ADHD와 수업 시간

by 이가연

어제부터 불어 학원에 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어, 중국어 배울 때는 수업 시간이 1시간 50분이었다.. 중간에 한 번 쉬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여긴 3시간 수업에 한 번 밖에 안 쉬었다. 아...


학창 시절에 초등학교는 40분, 중학교는 45분, 고등학교는 50분 이렇게 수업 시간이 늘어나지 않는가. 내가 28살이 되었다고, 가만 앉아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다!


나에게 가장 적당한 건 1시간에 10분씩 쉬고 딱 2시간 수업하는 것이거늘... 그런데 문제가 더 있었다. 하필 내가 선택한 반이, 너무 쉬웠다. 게다가 프랑스인 선생님이셨다. 초급반이기 때문에, 프랑스인 선생님이라고 할지언정 한국어를 하셨는데... 거기서 매우 문제가 생겼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너무 느릿느릿하고, 내용까지 쉬워버리니, 3시간 수업이 아주 아주 길게 느껴졌다.


ADHD인은 상대방도 말이 빠르고, 휘몰아쳐야한다. 그래야 3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을까~ 말까다. 나는 어려운 반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정신없이 말해야 한다. 그래야 도파민이 팍 돌면서 집중이 팍 된다. ADHD인은 전쟁터에서 가장 잘 살아남을 사람이자, 일상에서 가장 지루함을 쉽게 느낄 사람이다.


그래서 끝나고 한 단계 높은 반으로 바꿨다.


일본어, 중국어 학원 다닐 때에는 딱히 어려움 없었다. 3시간이 되면 힘든 거 같다. 꼭 이렇게 말하면 '3시간은 누구나 힘들지.'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은데, ADHD인은 백 배로 힘들다고 보면 된다.


영국에서 2학기 때 생각이 난다. 한 과목이 3시간 짜리였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전공에 미쳐있는 사람이다. 그 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과목 전체가 마음에 들어서다. 수업은 너무 좋은데, 내가 앉아있기 미칠 거 같았다. 그래서 ADHD를 진작 알았으면 좋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도 아닌데, 도저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잠깐 나갔다 들어오고 그랬다. 영국 학교는 그런 걸 10000000000% 이해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상당히 죄책감 들어했다.


심지어 학기 막판에는, 3주 동안 모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발표 시험을 봤다. 그런데 맨날 똑같은 곡이었다. 진짜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교수도 너무 계속 똑같은 거 들어야하니까 학생들한테 미안하네, 라고 했을 정도인데 ADHD인 나는 어땠겠나. 마찬가지로 중간중간 나가서 쉬어야했는데, 만일 미리 알았더라면 교수한테 "내가 ADHD라 지금 똑같은 걸 계속 들어서 돌아버리겠다"라고 하면 그걸 "오우 당연하지. 그럼 너는 그냥 듣지 말고 쉬라"고 하지 않을 영국 교수는 존재할 수가 없다.


저번에 올렸던 글을 다시 한번 올리겠다. 이걸 보고 상당히 마음이 안 좋았다. 왜!!!!! ADHD를 영국 석사 졸업하고 안 거야.. "도와주세영"하면 도와줄 수 있는 나라에 있었는데!!!!! 한국은 개뿔 나가리란 말이야 지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나는 과제 기한 추가, 시험 시간 연장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순간들이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인간관계만 힘들어. 학업은 알아서 잘했어.'라고 생각해왔지만, 한국인답게 난 그냥 참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내가 과연 인간관계만 힘들었을까. 인간은 더 나를 죽여놓을 뿐이었지. 인간관계가 불지옥이었으면, 다른 건 그냥 지옥이었을 것이다.




캐나다랑 영국이랑 얼마나 다를진 모르겠지만, 영국도 ADHD 친화적인 나라다. 영국에 있는 오빠는 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데, 주기적으로 ADHD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을 이수해야한다고 했다.


영국 가고 싶단 말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럼 그냥 다시 가." 따위 말을 하는 한국인들에 노이로제가 걸려서 그만.. 왜 이렇게 예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날 셰도우복싱하게 할까.) 불어 학원에서 반을 변경하고, 더 어려운 반으로 가면 과연 집중이 잘 될지 시험해보고 싶은 것처럼, 찾아나갈 것이다. 그래도 3시간은 도저히 무리라면, 2시간 수업하는 학원을 찾아내면 된다. 서울에 뭐 없겠나.


안타깝게도 내가 알아서 해야한다. 나에겐 지금 저 장애센터 어드바이저도 없으니까. 정신과에 방문할 수는 있지만, 병원은 말그대로 약을 받으러 가는 곳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런저런 약을 다 먹어봐도, 싹 다 부작용이 있어서, ADHD약은 비상시에만 먹을 수 있다.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봐도, 나처럼 약이 싹 다 안 맞는다는 케이스는 안 보인다. 내가 알아서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나는 원래 잘했어. 우수한 학생이야. 나는 대단해.'하지 말고,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겼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영국인처럼 생각해라. 여기가 영국이었으면 어떻게 할래?'하면 좋을 거 같다. 그래서 난 학원 선생님도 아무리 초급반이라도 외국인이 훨씬 낫다. 수업 중간중간 못 앉아있겠고 나가고 싶을 수도 있는데, 한국인 선생님한테 그 양해는 못 구하겠다. 1시간 반 수업하고 10분 쉬지 말고, 1시간 하고 5분씩 쉬자고 제안도 할 수 있을만한데... 뭔가 비웃는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느껴질까봐 말도 못 꺼내겠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거나 저거나일 문제일지 몰라도, 나는 미쳐버릴 게, 안 미칠 수 있는 방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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