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공익이었을까 면제였을까 생각해 봤다.
ADHD 뿐만 아니라, 우울증, 불안 장애, 별별 갖다 붙일 수 있는 서류 기록이 많아서 무조건 공익이다. 공익이냐 면제냐 문제인데, 면제 받아야 한다.
그래야 되는 이유가 있다.
동생이 공익 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에 출근해서 꼭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지 않나. 정말 천사 같은 일터를 만나서, 이런이런 어려움으로 이런 건 불가하다는 걸 다 이해해 주고받아준다면 모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훈련소처럼 숙식도 다 같이 해야 하는 단체 생활은 그냥 당연히 불가하고, 공익도 안 될 거 같다. 일상생활 불가하다고 끈질기게 면제까지 갔어야 했다. 왜냐하면 정말 조금이라도 강압적인 환경에서 욱하고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개인이 편하자고가 아니라, 자 타인의 안전을 위해서다. 진심이다.
난 도대체 지금까지 어떻게 잘 살아왔을까.
언제 마지막으로 알람을 듣고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무려 영국에 있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때도 일주일에 한 번만 아침 10시 수업이 있었다. 근데 영국에 살 때는 알람 없이도 7-8시에 빠딱빠딱 잘 깼다. 11시에 자던 새 나라 어린이랑 알고 지냈었는데, 그 영향으로 나도 12시엔 자는 습관이 들었다. 대학 다닐 때도 좀처럼 아침 수업을 잡지 않았고, 제일 빠른 게 10시 45분 수업이었는데, 무려 본가에서 학교까지 17분 걸렸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있었을 수 있는 이유는, 매일 아침부터 수업이나 일을 하러 가야 하지 않고, 단체 생활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었던, 집안의 경제력 덕분이다. 진짜 그게 제일 크다. 만일 얹혀 살 집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정신과 약을 많이 먹어야 경제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나는 정기적으로 먹는 약이 없다. 필요시 약만 존재한다. 밥 잘 챙겨 먹고, 유튜브 열심히 하고, 프랑스어 공부하고, 그런 기초적인 생활도, 솔직히 지금 약을 매일 안 먹어도 된단 것만 해도 박수가 나온다. 영국에 있을 땐 어떻게 가능했냐고? 그 때도 필요시 약은 챙겨 갔다. 도파민 시스템에 에러가 있어서 남들보다 쉽게 지루하고 우울해질 수 있는 건데, 영국에선 매일매일이 도파민 파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근교 여행을 갔고, 캘린더엔 설레는 일정들로 가득했다. 음악 전공은 싹 다 개인 플레이라, 대학이고 대학원이고 팀플이 없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점심때 밥을 항상 혼자 먹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밥 먹는 것도 집단생활이니까. 난 밥을 굉장히 빨리 먹는데, 기다리는 걸 도무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ADHD인 건 진작 발견 가능했다. 여담으로, 맛집 줄 서는 것도 절대 안 한다.)
회사를 다니면 동료들끼리 같이 점심을 먹는다고 들었는데... 나에겐 정말 불가능하다. 1대1이 아닌 자리에 내가 놓이는 거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진짜 영국에서나 있었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래도 여자로 태어나게 했구나... 날 바로 생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집에서 안 태어나게 했구나. 복이다...
술게임을 아예 한 개도 모를 정도로, 술자리에 가본 적이 없는 건 결코 당연하지 않다.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럴 일이 한 번도 없었다.
ADHD였다는 사실을 28살에서야 알았을 정도로, 강제적이고 압박을 주는 사회적 환경에 놓이지 않았던 건 결코 당연하지 않다.
설령 조금이라도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그냥 바로바로 다 차단해 버릴 수 있었던 건 결코 당연하지 않다. 보통 월급을 받아야 하니까 그렇게 못 한다.
역시 쓸데없는 생각이란 없다. 다 쓸데 있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