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해리포터 광팬이었기 때문에, 영국은 유학 가기 전부터 꿈과 환상의 나라였다. 현실을 알게 된 이후로 욕하긴 하지만 그게 다 애정이다.
오늘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여의도에 이사 와서 처음으로 더 현대 문화센터에 가보았다. 사실 더 현대에 잘 갈 일이 없었다. 팝업스토어 보러 잠깐 가봤달까. 그런데 지난달에 '나를 위한 투자에는 돈 아끼지 말자'라는 결심을 한 만큼, 문화센터 강좌도 열심히 찾아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내셔널 갤러리는 강의명을 보자마자 '이건 들어야지' 싶었다. 지금껏 내셔널 갤러리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가보았고, 안에 들어가진 않더라도 자주 지나쳤다. 나는 런던 웨스트엔드, 코벤트 가든 구역을 런던 갈 때마다 가기 때문에 여길 지나칠 수밖에 없다. (런던을 지금까지 20번 이상 방문해 봤다. 강의 처음에 런던 여행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던데, 여기 나보다 런던 많이 가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서 좀 근질거렸다.)
박물관보다 미술관 가는 걸 훨씬 좋아한다. 미술도 딱 인상주의만 좋아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건 여행에 크게 도움이 된다. 내셔널 갤러리만 해도, 굉장히 넓다. 어차피 하나하나 다 못 본다. 그런데 그 인상주의라고 하더라도, 이젠 그림을 좀 알고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오디오 가이드 듣는 걸 안 좋아하기 때문에, 뭘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셔널 갤러리에 갔을 때에도, 어릴 때부터 명화책에서 보던 그림 위주로 봤다. 고흐, 르누아르 같은 유명한 화가들 작품 보면서 '우와~ 책에서만 봤는데...'하는 데에 그쳤다. 이제 그건 충분히 했다. 이제 더 이상 고흐 작품을 본다고 '우와 고흐다' 하질 않는다.
강의에서 첫 그림으로 고흐의 15송이 해바라기를 보여주셨다. 고흐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기 때문에 측면에서도 한 번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영국에서 미술관 탐방할 때 가장 좋았던 점은, 한국처럼 미술품 주위에 가까이 다가가지 말라는 선이 안 쳐져있는 것이었다. 만지지만 않으면 아무리 가까이서 봐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거 같았다. 가까이서 보면 느낌이 다를 거란 생각은 했는데, 측면에서 보면 어떨지는 생각을 못 해봤다.
측면에서 봐야 되는 다른 그림도 하나 더 보여주셨다. 그건 아예 옆에서 보면 해골이 숨겨져 있는 그림이었다.
강연자 님이 파리에 처음 가셨을 때 이름 모를 강가를 걸으면서 여긴 인상주의 작품이 그냥 나오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정확한 표현이다. 나도 파리에 처음 가봤을 때 겨울이었다. 런던과 마찬가지로 우중충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 우중충한 맛이 또 매력이다... 역시 인생은 멀리서 봐야 희극인 것인가.
역시 인상주의를 좋아하다 보니, 오늘 보여주신 그림 중에는 이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카미유 피사로의 'The Boulevard Montmartre at Night'이다. 이 그림은 가까이서 보면 좀 뭉개져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어느샌가 초점이 맞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1897년 작품인데... 한국은 갓 쓰고 다닐 때, 유럽은 저렇게 쇼윈도에 형형색색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던 모습이 참 신기하다.
이건 '와 그림 진짜 영국스럽게도 그려놨네' 싶었다. 생각해 보면, 음악만 영국 날씨에 영향을 받았겠는가. 미술도 마찬가지다. 우중충하고로... 그림에서도 느껴지지만, 영국의 안개는 한국과 차원이 다르다. 좋게 말하면 영화 같다.
끝나고 바로 다음 달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강의를 신청했다. 매주 듣기는 부담스럽고, 진짜 가볼 거 같은 미술관만 원데이로 신청하면 딱 좋을 거 같다. 현재로서 제일 가보고 싶은 게 뉴욕이다.
사실 1시간 반 정도 되는 강의 시간 동안 뭐 얼마나 대단하게 미술사에 대해 학습하고 작품들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일단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 다르다. 카미유 피사로라는 화가 이름 처음 들어봤다. 유럽 처음 갔을 때, '이야 미술 전공한 엄마가 어릴 때부터 명화 책으로 조기 교육 시켜서 내가 아는 그림이 많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도파민이 안 돌아서, 더 알아야 한다.
'오 저런 작품도 있구나. 재밌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작품과 화가에 대해 알아보는 게 공부다. 어차피 올해 여름에 런던에 가게 될 테니 그때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는 '공부하고 오니까 훨씬 눈에 보이네'하고 느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