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페스티벌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설령 되더라도 이거 하나 하자고 가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어차피 그냥 여행도 가는 마당에, 연락이 왔는데 좋은 기회면 가는 게 맞다.
아무래도 영국이 더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오늘은 흔히 광고되는 페스티벌이 아니라, 지역을 세분화하여 찾아 지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우스햄튼은 한국으로 치면 대전, 천안이다. 서울하고 가깝긴 한데, 기차는 잘 다니는데, 뭐가 진짜 없는 곳.
일단 소튼부터 검색했다. 찾다 보니, 학교 공연장에서 재학생 공연팀 모집한다는 공고도 봤다. '나 때는 왜 이런 거 없었냐' 싶어서 울화가 확 치밀었다. 그런 기회를 기대하고 간 건데, 학교에서 얻은 음악 관련 기회가 하나도 없었다. 리사이틀은 한 번 했지만, 그건 공연이 아니라 한 과목의 성적 100%에 해당하는 평가였다. 음악학부 학생대표로 회의에 참석했고, 교수들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단 한 분 제외하곤 메일을 하도 무시해서, 졸업 후에도 분노가 많이 쌓였다. 그 한 분 말로는, 나 덕분에 지금 애들은 내 말이 아니었으면 없었을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방금 본 공고도 그 포함이려나 싶다. (오히려 나를 더 잘 챙겨준 건, 라디오 DJ 자리까지 준 건, 학교 밖 사우스햄튼 네트워킹 그룹이었다.)
동시에, 학교 공연장에서 공연하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앞으로 설 무대가 무궁무진한데, 그깟 학교 공연장이 중요한가. 물론 최면 치료를 받았을 때, 첫 장면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나에게는 추억이 깊은 곳이긴 하다. 그런데 내 경험 상, 아무리 지금은 마음이 시려도, 나중에 보면 별 게 아니다. 좋은 기회들이 훨씬 많이 생겨서 하나도 안 중요하게 된다. 예를 들어, 기획사 오디션들이 있다. 이메일은 당연히 숱하게 무시되었고, 2차 오디션을 봐도 한 번도 3차 오디션까지 간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기획사들은 애초에 나랑 안 맞았다.
또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10년 동안 지원해 봤는데, 처음으로 1차 합격된 적이 있었다. '내가 진짜 넌 오디션 프로그램 안 나가냐는 소리를 10년째 듣고 있는데, 드디어 처음 1차 합격이네. 제발 TV 좀 나오자.' 싶어서 간절했는데, 역시 2차의 관문을 넘지 못했다. 근데 그 프로그램 잘 안 됐다. 아무리 당시에는 간절해도, 그다지 간절할 필요 없는 일도 많단 걸 깨달았다.
어제오늘 계속 새벽 5시면 눈이 떠진다. 뇌가 아주 각성 상태다. 여행 가도 6-7시면 자동 기상해서 안다. 이미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영국 오빠와 어제부터 신나게 공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참 벅찼다. 클래식과 실용음악으로 분야는 다르지만,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이미 걷고 있는 사람이 유일한 친한 친구라서 감사하다. 원래 도전적인 것도 있지만, 잠재의식에 '나도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을 제대로 불어넣어 준 건 이 분이다. 꼭 엄청 유명해지지 않아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봤다.
어제오늘 합쳐서 27군데다. 꼭 원하는 방향으로 해외에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