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레 포기하지 마라

by 이가연

도움을 요청할 줄 아는 것도, 지레 포기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영국 갈 때마다 만나고 있는 교수에게 '나 지금 영국 전역에 있는 페스티벌 40군데 이상 지원했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안부 인사 따위 생략하고 바로 링크를 파바바박 보내줬다. 이미 눈알 빠지도록 구글링을 했기 때문에, 다 아는 내용이긴 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나는 보고 지레 포기했던 공고였다. 학교 학생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왜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는데, 졸업하고 생기냐'하면서 욕했는데, 교수는 졸업생이라고 말하고 그냥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진작 이 교수에게 물어봐도 될 일이었고, 졸업생이라고 하고 한 번 시도는 해볼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작년에 사우스햄튼에서 참여했던 페스티벌도, '영국 가는데 혹시 내가 참여할 수 있는 거 없냐'라고 말했더니 알려준 거였다.


학생 계정이 없어서 바로 지원서폼 작성은 하지 못하여, 이메일로 문의를 넣었다. 메일 쓰기에 앞서, 지금까지 그 40군데 이상 돌렸던 PPT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점검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갈아엎었다. 지금껏 지원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수정하면서 계속 심장을 붙잡았다. 그동안은 딱히 간절하게 '이 페스티벌에 출연하고 싶다'하는 건 없었다. 이건 너무 달랐다. 그 공고를 보고 굉장히 마음이 시렸다.


그냥 PPT 수정하면서 뭐가 그렇게 중간중간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로 마음이 동요했는지 참 신기하다. 그만큼 심장이 반응한단 건 좋은 거다.


간절할 만하다. 그 공연장을 참 좋아했는데, 남들 두 번 할 때 한 번 밖에 공연을 못 했다. 졸업 공연을 한국에서 그냥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밖에 없었단 사실이 그래도 좀 아픔이었다. 사실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최면 치료를 받을 때, 처음 나온 장면이 그 공연장에서 노래하는 내 모습이었다. 6개월 전에 받은 최면임에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는 조명 아래에서 노래하고, 너는 무대 기준 왼쪽 분단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지.


그동안 최면 장면이 마치 제3세계, 평행 우주처럼 느껴졌다. 그게 미래를 봤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그런데 혹시, 정말 혹시 생각했던 것보다 내 영적인 능력이 세서, 최면에서 본 게 다 그대로 이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진심으로 깨달았다. 내가 학교 자체를 진짜 사랑하는구나... 기가 막힌 애증이다. 학교 자체는 커리어 부서랑 웰빙팀 잘 되어 있다고, 캠퍼스도 초록초록해서 예쁘다고 칭찬하는데, 음악학부는 이메일 다 씹고 학생들 방치했다고 엄청 욕한다. 그런데 그건 몇몇 교수들이 정말 잘못한 거다.


원래 애정이 없으면,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런데 학생 때나, 졸업 후에나, 참 학교에 대해 말이 많다. 학생대표일 때도 제일 말 많았다. 그렇게 학부에는 무시당했는데, 한 교수라도 어떻게든 붙잡는 내가, 또 그 돈을 들여서라도 어떻게든 영국 공연에 이름 올리고 싶어서 수많은 지원을 하는 내가, 새삼 보통이 아닌 거 같다. 지금 하는 이 노력은, 필히 성공할 거다.


페스티벌이 몰려있는 5월 말이나 8월 말 방문을 생각했는데, 이 공연 기회는 6월이다. 6월엔 영국 오빠도 영국에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괜찮다. 최면 그대로 이뤄진다면... 2년 동안 묵은 때가 전부 씻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최면에서라도 봐서 행복했다.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정말 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일단 메일에 긍정적 답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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