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는 우주에 맡긴다. 나는 마음을 품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작년부터 나의 '직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직감으로 느끼는 게 거의 다 맞았다는 걸 알고 나서, 더 예민하게, 아주 자그만한 단서에도 귀 기울이게 되었다. 이게 되면 될수록, 인생이 참 쉬워질 거 같다. 그동안 힘들었던 건, 직감 말을 안 들어서였던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석사를 졸업하면서, 아니 재학 중에도, 여기가 내 마지막 학교가 아닐 것이라는 감각이 있었다. 그렇다고 꼭 또 하고 싶은 전공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그랬다.
종종 더 구체적으로 찾아본 적은 있다. 몇 년 전 나는 음악치료 석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음악의 치료적 접근에 '석사할만큼' 관심이 없단 걸 깨달았다. 물론 음악인 중에서 관심은 많은 편에 속하겠지만, 그게 석사 논문을 쓰고 싶은 정도의 관심은 아니다.
영국에서 학교 다닐 때, 마주치는 음악학부 학생의 전공은 크게 세 가지였다. 나는 뮤직 퍼포먼스였고, 음악 교육, 그리고 음악 매니지먼트 전공이 있었다. 원래 난 음악 교육 석사를 할 뻔했다. 그런데 '나 또 부모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하려고 하네. 이게 인생에서 몇 번째냐.' 싶어서 뮤직 퍼포먼스로 이미 입학 원서를 냈는데도 변경 신청을 해서 바꿨었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바라온 건 싱어송라이터의 길이지, 음악 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사랑 석사 전공이 다르면, 미래에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학사도 석사도 똑같이 '퍼포먼스'를 고집했다. 무대에 설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
학교 다니면서 수업이 일주일에 6-8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날에, 음악 매니지먼트 전공 수업을 청강했다. 다른 것도 더 듣고 싶었지만, 정보가 없었다. 음악 매니지먼트 전공인 친구가 있어서 낑겨서 들었다. 뭘 배웠는지 머리에 남은 건 없는 거 같은데, 청강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음악 매니지먼트에 호기심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과거에 뮤직 퍼포먼스 전공으로 합격했던 학교 중 하나다. (학교를 런던으로 안 간 걸 매우 후회했는데, 이름만 봐도 런던이다.) 당시엔 저 전공은 알지도 못 했다. 그런데 이제 만일 석사를 한 번 더 할 수 있다면, 가장 유력한 전공은 음악 산업에 대한 전공이다.
하지만 설령 나에게 1억이 뚝 떨어져도, 당장은 크게 끌리지 않는다. 석사를 하고 싶을 만큼 관심이 있는 건 맞는데, 타이밍이 아직 아닌 거 같다. 나는 아직 이 ADHD 컨디션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답을 찾는 중이다. 약물 치료가 전부 부작용으로 안 되기 때문에, 계속 내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방향을 잡고 있다. 다시 한 번 해외 나가서 살게 된다면, 이 정신 건강 부분에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안정감이 잡힌 상태로 나가고 싶다. 이제 내가 영국에서 장애인이고, 장애 학생 부서에 도움을 청하면 된다는 거 안다. 그런데, 애초에 도움을 청할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들고 싶다. 재작년과 작년, 작년과 올해의 나는 차원이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 전문가들도 나는 참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설령 내가 32살에 저 전공 석사로 입학한다고 한들, 괜찮다. 애초에 영국 애들은 나를 실제 나이보다 5, 6살은 더 어리게 보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섞이기에 이상하지도 않다. 또한, 지금보다 더 경력이 쌓인 후에, 저 전공을 공부해야 더 제대로 얻을 수 있을 거 같다.
논문을 쓰게 된다면, 연구 대상은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나를 어떻게 매니지먼트하고, 어떻게 아티스트로서 더 발전시킬지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될텐데, 내가 이미 어느 정도 팬층이 생긴 상태에서, 단독 콘서트를 몇 번 열어본 상태에서 하고 싶다. 그래야 이미 티켓 예매를 오픈하는 절차, 굿즈 만드는 절차, 공연 셋리스트 구성, 무대 구성, SNS 이벤트 등 이미 경험해본 상태다.
지금 저 전공 수업을 듣는 것과, 단독 콘서트를 열어본 뒤에 듣는 것은 얻는 게 차원이 다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현실부터 본다.
돈.
그런데,
나에겐 충분한 영어 실력이 있고,
이미 석사를 한 번 취득해봤다는 영국 대학에 대한 이해도도 있고,
아직 20대라는 나이도 있고,
배움에 대한 강한 열정과 호기심이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하는지 잘 알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잘 알고 꾸준히 알아나가는 의지도 있다.
감사하다. 가슴에 무언가를 품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유튜브만으로도 월 얼마를 벌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만일 유튜브로 월 300만 원씩 벌어서 집값과 생활비가 해결 되면, 학비 2500만 원만 있으면 된다.)
석사 논문을 써본 사람들은 '미친 소리하네' 싶을 수도 있다만, 나는 논문이 써보고 싶다. 내 전공은 논문 없이 졸업 공연이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ADHD인은 하나에 빠지면 미친듯이 몰입하는 습성이 있다. 남들 5시간 걸릴 일을, 1시간 만에 하기도 한다. 그게 하이퍼포커스 기능이다. 게다가 난 글쓰기를 좋아하니, 남들은 힘든 일을 쉽고 재미있게 할 자신이 있다. 음악은 논문 글자수도 12,000자던데, 과거 2천자 에세이 쓸 때 금방 썼다. 솔직히 한 달이면 될 거 같다.
이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방법이 어떻게 되든, 언제가 됐든, 이루어지게 되어있다. 석사 유학도 그렇게 이루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미국에서 음악을 공부할 거라고 적어뒀다. 그게 미국에서 영국으로만 바뀌었다. 언제 유학 갈 거라고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으나, 내가 언젠가 외국에서 음악을 공부할 거란 감각이 있었다.
당장 내가 딱히 해야할 일 없다. 그냥 지금처럼 살면 된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