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심리상담가 김현영 에세이 / 저녁달
이 책의 첫 문장 추천사에는, 마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같은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지금까지 읽은 심리학 책 중에 가장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이 내 마음에 쏙 들 거라는 믿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마흔 이후에 실명하게 된다는 말을 어느 병원을 가든 똑같이 들으면 어떻게 살까. 처음에야 누구나 그렇듯 말도 안 된다며 다른 병원을 찾겠지만, 어느 병원을 가도 같은 말을 듣는다면 그게 상상이 될까. 이렇게나 평생 잘 보고 잘 살아왔는데. 음... 안 보고 피아노 치는 연습부터 시작할 거 같다.
p67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학예발표회가 계기가 되어 시작한 발레는, 내 인생의 전부였다. 발레를 전공해 대학원 과정까지 마치고 대학 강사로 일하는 동안, 나는 발레를 비롯해 무용 공연장과 전시회장, 음악회 등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
- 나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작한 노래가 내 인생의 전부다. 시각장애인이 되어도 노래하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발레를 하다가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생각만 해도, 같은 예술인이라 그런가 이 글을 쓰면서도 소름이 쫙쫙 돋는다. 목숨줄인데... 어.. 어떻게 사셨지. 토슈즈 한 짝조차 없을 정도로 모두 버리고 가슴에 묻으셨다는 대목에서 이입이 많이 되어 울컥했다.
p77 "어머, 참 잘 읽으셨어요. 어제는 한 페이지 읽는 데 30분 걸렸는데 오늘은 25분 걸렸네요?" 점자를 익히는 교육생들을 지켜보고 있던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그제야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가 생겼다.
- 대안학교에서 청소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검정고시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무리 시험이어도 칭찬에 인색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40점이든, 50점이든 푼다는 것에 칭찬해줘야지. 검정고시는 몇 번 만에 합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합격하는 게 중요하다. 이 아이가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일이다.
p116 먼저 책을 구매하여 점자도서관에 맡기면 점자도서관에서는 그 책을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도록 특별하게 데이지 파일이나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러려면 시각 장애인이 맡긴 책을 스캔하거나 일일이 워드로 쳐야 하는데 그러한 일들은 주로 봉사자들이나 아르바이트생들이 맡아서 해주었다. 책 한 권을 제작하는데 대략 한 달 반에서 두 달이 걸렸다. 물론 그들이 내 책만 만드는 것도 아니었기에, 실제로는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 나도 시각장애인 복지관에서 이 봉사 활동을 했었다! 특히 악보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작업은 악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도돌이표, 달 세뇨, 다 카포와 같은 기호를 읽고 그에 맞게 가사를 입력했다. 그 외에는 보통 소설, 에세이였는데, 교재는 확실히 급하게 필요하실 텐데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게 참 안타깝다.
p128 프랭클이 말하는 '의미'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내게 빛나는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반드시 살아서 연구를 완성하겠다는 간절함을 품게 되었고, 그 마음이 수용소 생활을 버티게 한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 의미는 내가 부여하기 마련이란 말에 공감한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아니 니 돈 들여가면서까지 영국 페스티벌에 왜 가?" 할 수 있다. 나에게는 그냥 한 줄 이력이 아니라, 두고두고 몇 달 몇 년 가슴에 남는 의미가 있다.
p128 나 또한 시각장애인이 된 뒤 모든 것을 잃었다고만 생각했다. 그 이전에 내가 누렸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경제적으로 큰 곤란을 겪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도 늘 건강하셔서 (중략)
- 솔직히 나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작년부터 'ADHD는 눈에 안 보이는 장애야!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게 아니라고오오오!' 싶어 왔다. 그런데 솔직히 ADHD인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그 ADHD 약점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이다.
p191 물론 고려대학교에도 장애지원센터가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학부생에게만 해당되었고, 석 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 시각장애인이 쓴 에세이를 종종 읽었다. 그럴 때마다, 학교 관련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났다. 영국 학교는 학부건 석사건 박사건, 다 똑같은 학생이다. 내가 다닌 영국 학교와 고려대학교는 세계 대학 랭킹 순위가 비슷했다. 그러면 장애지원도 비슷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발 끝도 못 따라간다. 인서울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가, 장애인 학생이 비장애인 학생과 똑같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면, 명문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세계 랭킹 정할 때 휠체어 접근성, 장애 학생 환경까지 다 반영해야 된다고 본다. 그렇다고 장애 학생에게 '싫으면 유학 가든가'라고 한다면, 비장애인에게도 유학은 힘든데 그게 어디 쉽나.
p228 참석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비장애인이면서 장애 학생들을 돕기 위해 함께했던 학생에게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함께하는 시간 동안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그 경험이 자신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중략) 그들 중에는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제2외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학생도 있었다.
- 시각장애인 분들께 칼림바를 가르쳐드린 적이 있었는데, 몇몇 사람들이 시각장애인도 칼림바가 가능하냐고 묻곤 했다. 당연히 가능하지. 비장애인에게도 피아노, 기타보다 칼림바가 백 배 쉽다. 시각장애인에게도 똑같다. 잘하시는 분들은 놀랄 정도로 잘하시고, 시간이 오래 걸리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건 어느 그룹을 가나 마찬가지다.
책 중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에세이를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사 에세이는 처음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시각장애인 분들이 더더욱 다양한 직업을 가지실 수 있도록 대학들이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수교육과, 사회복지과 같이 한정적인 과만 권하는 사회란 걸 전부터 알아서 답답했다. 솔직히 실용음악과는 교재도 별로 없고, 다 실기다. 너무 충분히 다닐 수 있다.
이 책의 작가님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심리상담사의 꿈을 더 많이 꿀 수 있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