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의 온도 : 디지털 드로잉 전시

by 이가연

비슷한 '일상' 주제인데 개인적으로 '오늘의 기쁨' 전시가 훨씬 좋았다. 둘 다 처음 접하는 스타일의 전시라는 공통점도 있었는데, '오늘의 기쁨'은 천을 잘라 디자인하는 방식이어서 그 투박한 질감을 눈으로라도 느끼는 재미가 있었다. 오늘은 디지털 드로잉을 감상했는데, 그 생명력이 좀 약하게 느껴졌다.


그걸 심화시켜 주는 건 전시 구성이었다. 그림에 대한 설명이 빈약했다. '오늘의 기쁨' 전시에서는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아 작가가 어린 시절 농촌에서 겪은 걸 바탕으로 만들었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전시에서는 작가가 이걸 보고 그린 건지, 상상으로 그린 건지 감이 안 왔다. 물론 오디오 가이드를 들었으면 됐겠지만, 오디오 가이드 듣는 걸 싫어한다. (ADHD 매거진 어딘가 참조. 휙 습득해야지 차근차근 듣는 걸 못 한다.) 뿐만 아니라, 두 전시 모두 전시 끝자락에 짧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의 기쁨'에서는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 흥미로웠던 반면, 이번엔 지루해서 보다가 중간에 나왔다.


인상주의 미술을 구경하며, 작품의 질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었단 걸 깨달았다. 이렇게 알아가면 된다. 이미 내 취향이 아니라서 돈 날려본 전시회 입장료가 많다. 나는 음식이건 음악이건 사람이건 호불호가 참 세다. 관심 있는 건 미친 듯이 몰입하고, 관심 없는 건 눈길도 주지 않는데 그것도 ADHD 특성이다... 그래서 더더욱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은 이런 식으로 감상했다.



그림에 참 식물이 많다. 우리 집에도 그렇다. 아빠 회사는 IT 회사인데도 식물원인 줄 알았다. 그런 영향을 받아 나중에 혼자 살더라도 식물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아까 그림에도 검은 고양이가 등장했는데, 작가가 키우는 걸까, 아니면 키우고 싶은 걸까. 그림이니까 건반을 열어놨겠지만 실제로 안 치는데 저렇게 열어두면 먼지 쌓인다. 저 옛날 텔레비전은 작가가 실제로 본 걸까. 왜 하필 저 텔레비전이지. 텔레비전 위에 스탠드가 왜 필요하지 저기서 책 읽을 것도 아니고.



회색에 형광 핑크로 이뤄져 있다. 작가의 다른 그림들과 상당히 다른 색채다. 시계를 보니 4시인데, 왜 하필 4시일까. 전체적인 색깔이 회색빛이라 새벽 4시겠다. (그런데 다른 그림을 봐도 4시였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는 걸까. 저런 자세로 보면 안 불편한가. 왜 하필 이 그림만 칙칙하게 그렸을까.


그림 제목 보는 것도 좋아한다.


다이얼업이 뭐데... 챗지피티에 물어봐도 이해가 안 됐다. 전화선에 컴퓨터를 꽂아서 인터넷 접속을 한다고? 초등학교 때 인터넷 전화는 있었는데. 이번엔 다른 고양이다. 어지간히 고양이를 좋아하나 싶었다. 왜 강아지가 아니고 고양이일까. 컴퓨터 옆에 있는 CD와 휴대폰도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컴퓨터 모니터가 귀여운데 그냥 작품이라 그런 걸까, 아니면 진짜 저런 분홍색 컴퓨터가 존재했을까. 저렇게 뚱뚱하게 생긴 컴퓨터는 학교 컴퓨터실에서만 기억이 난다.


그림의 원제목과 한국어 번역이 다른 경우 찾는 것도 좋았다. 독일 카페 이름 자체가 제목이었는데, 한국어로는 도시의 공기라고 번역해 뒀다. 그냥 발음 그대로 적어도 됐을 텐데.

작가가 제목을 좀 대충 짓는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다. 기차, 올덴부르크 중앙역, 지역 기차, 암스테르담 1 2 3 4 등이 있었다.



이 그림 제목이 '지역 기차'다. 좀 더 여운을 줄만한 제목은 없었나. 굳이 저 부위만 그린데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이 그림은 암스테르담 4다. 차라리 재즈 클럽이라고 하지. 악기 연주자들이 아니라, 휴대폰 하는 여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음악은 안 듣고 휴대폰만 보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건가. 그건 그냥 내가 음악 하는 사람이라 드는 생각인가. 반면 같이 앉아있는 남자는 음악을 듣는 거 같다. 아니다. 여자가 휴대폰을 보면서 말하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말을 듣는 건가. 연주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연주하고 있을까. 이 분위기 마음에 들까.



기억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영국을 다시 가봤자 다 타버린 재만 느낄 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설령 다 타버린 재라 해도 그 안엔 뜨거운 울분이 남아있다. 분명 그걸 다시 느끼고 싶어서 가는 걸 것이다.



모든 전시가 다 나에게 감동과 울림을 줄 순 없다. 또 누군가랑 수다 떨면서 봤으면 달랐을 것이다. 나는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비로소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다니면서도 조금이라도 느끼려면 어지간히 내 취향을 제대로 저격해야 한다.


오늘 전시를 통해서 디지털 드로잉도 디지털 브러시로 그렸기 때문에 질감은 있지만 내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건 재미있었다. 이게 뭔지 모르겠는 현대미술보다는 적어도 뭘 그린 지는 알 수 있어서 훨씬 낫다.


혼자서도 어떻게든 공원, 서점 산책 말고 전시회 관람에 취미를 붙여 기쁘다. 나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가는 것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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