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저녁 먹고 펍 가서 노래하려 했는데, 걷다 보니 저녁은 패스하고 펍 근처에 있는 옵저버토리 힐 공원에 올라가서 사진 찍고 펍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 딱 내렸는데 다들 그 공원으로 올라가기에 나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도에 찜해둔 곳 중에 끌리는 곳을 그때그때 가는 방식으로 여행한다.
경치 감상도 하고 사진도 잘 나온다고 하더니, 역시 좋았다. 낮에 봤던 하버브리지를 더 멋지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역시나 사람이 많았는데, 그렇다고 또 그렇게 많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런 경치라면 응당 이 정도는 있어야지' 느껴졌다. 중국인이 상당히 많았다.
얼른 사진 찍기를 끝내고는 펍으로 향했다. 도착한 순서대로 정할 수 있는데, 다행히 1번 순서가 비어 있어서 했다. 그런 공연에서 항상 1번 하는 걸 선호한다.
펍에 어쩜 그렇게 노인이 많을까.. 생각했다. 영국에서도 펍을 종종 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다들 60대, 70대로도 보였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영국에 처음 갔을 때에도, 20대부터 70대까지 한데 어우러지는 술집이 한국에 어디 흔하겠냐며 이런 펍 문화는 좀 배워야 된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좀 특히 그랬다. 애초에 진행자 분이 60-70대로 보였다. 그러니 오늘 공연하는 사람들도 그 나이쯤 되셨던 거 아닐까. 공연자 중에 유일하게 젊은 사람은 나랑 어떤 남자였다. 그 남자가 공연자 보드에 이름 적으려 오는 순간 '헉'하고 놀랐다. 유일하게 젊은 사람이 잘생기기까지 하면 어떡하나.
내가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 얘기는 패스하고, 노래 끝나고 바로 그 사람한테 가서 얘기했다. 외국은 설령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나 껴도 될까" 하고 낄 수 있다는 게 좋다.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서 한참을 같이 얘기했다. 눈 마주치고 말하기가 어려울까 봐 눈에 힘을 줬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영국에 있을 때 이랬어야지. 영국 사는 잘생긴 남자를, 기회가 있을 때 찾아 말 걸고 다녔어야지!!
노래는 어찌했냐면, 이번에도 '아직, 너를'을 부르며 마지막 후렴을 부를 때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막 용이 되어 승천할 거 같은, 신기한 느낌이다. 이 노래는 앞으로도 이러려나. 그렇다면 참 감사하다.
미녀와 야수로 가볍게 긴장 풀며 시작하고, '그런 너라도'와 '아직, 너를'을 불렀다. 2시간 자고, 한참을 피곤하게 돌아다닌 후에도 그렇게 노래를 부를 힘이 나다니. 여행지라서 그렇다. 한국이었으면 도파민이 안 나와서 그렇게 못 돌아다녔다. '그런 너라도'는 그렇다쳐도, '아직, 너를'은 힘이 필요한 곡인데 부르면서도 마음에 들게 잘 부르는 느낌이 들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호주도 사람이 앞에서 노래를 불러도 시끌벅적하고 거의 안 듣는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60대 분들이 계셔서 힘 입어 노래했다. 동양인이라곤 나 밖에 없는데, 백인들 70%는 관심 없는 거 같은 분위기에서 노래하는 거... 솔직히 나니까 한다고 생각하고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끄러웠어도, 끝나고 몇몇 분들이 와서 노래 잘 들었다고 잘한다고 해주셔서 고마웠다.
오늘 찍은 브이로그 영상과 노래 영상도 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편집해 유튜브에 올릴 생각을 하니 설렌다.
'오늘 요약'
역시 나는 영국이 아니라, 그냥 영어권 국가면 다 좋은 거 같다. 설레기만 한다면 피곤함은 훨씬 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