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탈 때 여긴 왼쪽에 줄을 서고, 오른쪽을 비워 둔다. 처음엔 헷갈렸다. 영국도 한국과 똑같이 오른쪽에 서고 왼쪽은 걷는데... 호주는 왜 다를까.
여기 와서 계속 밥 메뉴 선정에 실패하고 있다. 한 숟갈 먹고 아.... 실망하기만 해 봤다. 아까 말차 아이스크림만 괜찮았다. 음식 값에 돈 날리는 것만 생각하면 일본 여행이 제일 좋을 것이다. 유럽이고 호주고 참 아깝다.
오늘부터는 발이 아프기 시작했다. 역시 한국에서 하루에 만 5천보만 걷겠다고 아무리 다짐했어도 쉽지 않다. 그래도 파스는 많이 가져왔다.
저녁과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서점에 갔다. 영국에서 사고 싶어서 봐두고 한국 와서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서 못 받은 책이 있었다. (영어 원서 어차피 한국에 다 판다. 그것도 5-7천 원 더 저렴하게. 한국 서점 측에서 미리 구매해두고 환율이 그만큼 오른 듯 싶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직접 보고 주문할 수가 없으니 영어권 국가 갔을 때 고르는 게 좋다.) 이 책은 나랑 만날 운명이었나 보다. 곡 쓰는 방법에 대한 책이다. 나는 늘 '그분이 오시는 것'에 의존했다. 심각하게 상처를 받은 후, 저절로 멜로디와 가사가 흘러나오는 것에 익숙하다. 안 그러면 사실상 곡 쓸 줄 모른다. 그래서 그런 상처 없이도 건강하게 곡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고 전부터 생각해 왔다.
서점에는 엄청나게 많은 중국어, 일본어 책 섹션이 있었다. 서점 이름만 봐도 일본 브랜드 같았는데, 일본어 공부 책 수백 권, 만화 수천 권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어 섹션은 없으니 조금 아쉬웠다.
의도적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게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다. 한국에선 일주일 동안 이만 보 걸으면서, 여행 오면 하루에 거의 이만 보를 걸으면, 또 그게 누적이 되면 종아리랑 발이 무지 아프다. 게다가 밥도 맛난 걸 한 번도 못 먹었다. 제일 맛있는 게 오렌지 주스다. 아는 맛이니까. 사람들이 여행 같이 가서 괜히 싸우는 게 아니다. 평소보다 더 쉽게 짜증이 날 수 있다.
그런데 전에 그랬던 적이 없는데, 신기하게 하루에도 열댓 번씩 입꼬리를 올리게 되었다. 역시 미래 일기 덕인 거 같다. 오기 전에 시드니에서 얼마나 즐거운 여행을 할지 미래 일기를 잔뜩 썼다. 그랬더니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한 행동들이 절로 나오는 듯 보인다.
앞으로 혼자 재밌게 여행을 다닐 수 있고 없고 가 이번 여행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됐다. 하루에 딱 만 5천보 안으로 걷도록 만보기를 수시로 보고, 한국말 들리면 돌 씹는 거 마냥 싫어하니까 귀찮아도 헤드폰 가지고 다니자. (그동안 한국이든 영국이든 항상 헤드폰 쓰고 다녀서 이건 몰랐다. 나도 이 정도인 나에 충격 받았다.)
가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하면 좋다는 건 전부터 알았는데,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길게 간 것도 문제였다. 볼 것도 없는데 남은 일수가 많으면 도파민이 안 나와서 발이 더 아프다. 이번에 5일 딱 적당하다. 내일은 본다이 비치, 내일모레는 타롱가주에 갈 거다. 아직 꼭 봐야 할 곳들이 남아있다. (동물원은 세 군데 다 가야 할 듯싶다. 쿼카를 아직 제대로 못 봤다.)
토요일 밤마다 불꽃놀이를 한다고 해서 보려고 호텔 밖을 나오니 비가 많이 와서 다시 들어갔다. 어차피 오늘 만 5천보 걸어서, 무리였다. 지금 발과 종아리 모두 파스를 붙이고 다리 스트레칭을 하며 글을 쓰고 있다.
비가 날 도왔다. 무리할 뻔했다. 불꽃놀이는 세계 어디서든 다 볼 수 있다. 굳이 무리해서 갈 필요 없었다. 버스로 애매한 도보 13분 거리였는데, 난 30분 더 걸을 상태가 아니었다.
역시 미래 일기를 쓰니 무리하지 않도록 하늘이 알아서 흘러가는 거 같다. 자기 전에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상상하는 것도 좋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아까 동물원에서 코알라 자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내일도 비 예보가 있지만, 일기예보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비가 안 오면 본다이 비치와 오페라 하우스, 비가 온다면 박물관과 도서관에 갈 예정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느긋하게, 여유롭게 즐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