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 가는 길에 달링 하버가 있었다. 어릴 때 내가 동생을 업으며 귀엽게 걸어가던 비디오가 있는 장소다. "헬로~ 마이 네임 이즈 그레이스"나 겨우 했을 내가, 이제는 외국인을 한국인보다 더 편해하고, 혼자 노래하러 온 게 자연스럽다는 사실에 뭔가 기분이 이상해졌다. 시드니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디오 속에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 시드니 타워, 빅토리아 빌딩, 달링 하버, 다 그대로였다. 나만 키는 30센티는 더 크고, 어른이 되어 있었다.
영국은 정해진 시간 되면 딱 이름 적게 했는데, 내가 간 시드니 두 펍은 도착 순서였다. 일찍 도착했는데도 7번째 순서여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엔... 6070 나이대 사람들이 2030 대가 술 마시는 술집에서 기타 들고 와서 노래할 수 있는 데가 없다. 한국 세대 갈등 심하다고 하지만, 그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20대부터 70대까지 다 같이 어우러지는 장소가 해외처럼 흔해야 된다. 한국은 세대 별로 장소가 너무 나뉘어 있다.
첫날 공연은 사람들 떠드는 소리가 시끄럽긴 했다. 영국도 그럴 때가 많은데, 그건 단점 이긴 하다. 영상에도 배경 소음이 많이 담겼다. 하지만 마지막 날 공연은 노래하는데 비교적 조용했다. 노래하는 위치도 약간의 단상 위에 올라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마지막 날엔 원피스를 입고 갔다가,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드레스를 입고 호텔 밖을 나서긴 아무리 해외라도 좀 부끄러웠다.
그 드레스는 한국에서는 입을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해외 나갈 때나 입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입어보니, 거기도 온통 60대 분들이라 어지간히 어색했다. 한국에서도 과감히 입어도 될 거 같다.
노래는 두 공연 다 한 사람당 세 곡씩 할 수 있었다. 그래서 2분짜리 '착해 빠진 게 아냐'는 부르기 아까워서 넣어 두고 3분 곡으로 했다. 차라리 한 명당 15분 제한을 주면 좋을 텐데. 어떤 사람은 한 곡이 5-6분 했으니, 나는 비교적 공연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시드니에서 열리는 오픈 마이크가 한정적인지라, 첫날에 봤던 사람들을 그대로 다시 보기도 했다. 공연에서 내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넌 목요일에 와서 벌써 가냐고 했다. 그래도 난 충분했다. 이제 시드니 졸업이다.
혼자 여행 중 좋은 경험으로, 또 예쁜 영상으로 남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