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

by 이가연

1. 썩은 동아줄은 잘라내야 한다.

설령 동아줄이 하나더라도 썩었으면 잘라내야 한다. 멀쩡한 동아줄이 얼마든지 하나 더 생길 수 있다. 아무 줄도 없는 상황도 견뎌야 한다. 작년엔 영국인 친구와 연이 끊어졌다. 친구가 둘 뿐인데, 한 명과 끊어지면 아주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사이 지인이 더 생겼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니,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썩은 걸 잘라내는 거다.


오늘은 영국 학교 교수와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굉장히 상처를 받았다. 영국 음악학부 교수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내 메일을 죄다 무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은 연락을 받아주고, 또 온라인으로 만나자고까지 하니 너무 고마웠다.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했는데 이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고 해서, 나에게 상처되는 말과 조언들을 할 순 없다. 이미 지난주에 감지를 했었는데, 무시하고 한 번을 더 봤다. 제발 한 번에 잘라내어 상처받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2. 하늘이 그 사건, 사람을 겪게 하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2024년부터 주기적으로 하는 생각이다. 이 생각 하나면 삶이 살만해졌다.


10년 동안 혼자 음악을 해왔다. 10년 동안 해온 노력, 그리고 실패에 대해서 한도 끝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실패들을 다 말하고 앉아있을 수 없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실패해 본 줄도 모르고, 단순히 아직 인기가 없기 때문에 '초심자' 취급을 하며 조언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그럼 욱하는 마음과 동시에 눈물도 그렁그렁해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뼈가 되는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 안 됐던 게, 영국에선 되겠니?


하늘이 보기에 답답했던 모양이다. 영국 오빠도 박사 말렸다. 100% 원해서가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도피였기 때문이다. 좋았던 시절에 대한 갈망이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분명 내가 더 이상 시간 낭비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에이. 한두 군데 학교 지원하는 게 뭐. 돈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한 명 뽑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미팅 이후로 접었다. 분명 작년 5월, 9월에도 영국에 갔다. 여긴 여행은 좋아도 안 살 거라고 했다. (심지어 즐거운 여행도 아니었다.) 그랬던 사람이 박사 지원서를 쓰고 있으니, 하늘이 수를 썼다고 생각한다.


3. 영어는 분노 조절을 도와주지만... 강제적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을 기억할 것.

나는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화가 매우 났을 땐, 갑자기 목에 칼이 들어온 느낌이 든다. 말이 잘 안 나온다. 원어민이 아니란 증거다. 장점도 있다. 한국어로는 분노 조절에 너무 어려움을 겪어서, 종종 곤란함을 겪는다. 오늘은 영어였기 때문에, 분노가 표출되지 않았다. 장단점이 있다.


사람은 참 망각의 동물이다. 문득 영국에서 기숙사 문제로 너무 열이 받았을 때, 목에 칼 들어온 느낌을 받고 울었던 기억이 났다. 옆방이 너무 시끄러워서 도대체 방에 있을 수가 없는데, 수십 번을 얘기해도 바뀌질 않고 경비원 마저 다른 사람들은 다 안 그러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했다. 그 말에 너무 황당해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한국어였으면 욕을 했을 텐데, 영어는 험한 욕이 나오는 미디어도 접하지 않고 정석대로 교육받아서 그런 거 같다.


4. 이해시킬 필요 없는 사람도 너무 많다. 어지간한 사람은 전부 흘려보내라.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얼마나 실패했어도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사람하고 말을 더 섞어선 안 된다. 이미 연초에 겪은 바 있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도 모르고 말하는 사람에게 분노했다가, 크게 상처를 입었다. 세상에는 그냥 흘러가게 둬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그게 정말 아니에요. 내 얘길 들어보세요. 그런 조언은 내가 10년 전에도 알았어요." 하는 건 정말 시간과 에너지 낭비다. 물론 내가 이 충동성 조절에 장애가 있고 힘든 건 너무 맞다. 그래서 확 전환시키는 노력을 코로나 시기 때부터 상담 받으며 해왔다. 오늘은 바로 유튜브 라이브를 틀었다. 라이브에서 간략하게 얘기하고, 사람들 댓글을 보니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5. 유명인의 이름을 이용하는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이랑 문자도 하는 사이네, 내가 그 사람 뭐 하는데 도와줬네, 하는 사람 중에 괜찮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연예인 후광 효과에 등 입어,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계속 음악이 하고 싶다면, 이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순간 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또 추가된 것은, "내가 원래는 이걸로 돈을 받지만, 너한테 받을 생각은 없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좋은 어른이겠나. 내가 봉사로 아이들 가르칠 때 생각해 보면 쉽다. "원래는 이걸로 돈을 받지만"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다.




첫 미팅에서 이미 그런 촉을 느꼈다. '왜 내가 만나고자한 목적과 벗어난 이야기만 계속 하지? 약속을 했으면 1시간은 만날 줄 알았는데, 왜 20분만 자기 할 말 하고 가지? 이거 마치 무슨 컨설팅 프로그램을 나한테 팔고 싶은 거 아냐? 오늘은 맛보기고, 다음부터 돈 달라고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너무 다 믿어서 탈이다.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 잘 경계할 줄을 모른다. 나를 다 오픈하는 게 기본 값이다. 그런 내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면, 무시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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