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영국

피터 빈트 홍성광 지음 / 틈새책방

by 이가연

p27 나는 태어난 곳을 말할 때 항상 "영국령 홍콩"이라고 한다. 내가 태어난 곳이 영국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 영국령 홍콩은 없다.

p29 홍콩에는 영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다. 빅토리아 트램을 비롯해서 길거리 이름에도 영국의 흔적이 있고, 호텔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시면 영국에 있는 것 같다.

- 그래서 얼마 전까지도 홍콩에 사는 건 어떨까 생각했었다. 여담으로, 여지껏 한 번도 애프터눈 티를 마셔본 적이 없다.


p57 사실 '자신들이 특별하다'는 인식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그런데 영국은 이런 자부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것을 내세울 정도가 됐다. 브렉시트가 바로 그것이다. (중략) 영국이 깔보고 싫어했던 나라들이 만든 체제에 영국이 들러리를 서는 게 못마땅하다는 감정이 깔려 있다. 그래서 영국은 EU에 동화되기를 거부했다. 유로화를 쓰지 않고 파운드를 고집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예전에 나의 영국 발음을 가르쳐주던 튜터가 브렉시트를 아주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영국 왕실도 세금 낭비라고 싫어했다. 영국인도 당연히 각자 생각이 달라서 영국인은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다.


p63 영국인들은 프랑스인을 '프로그'라고 부른다. 프랑스인은 '개구리나 먹는 애들'이라는 의미다. 영국인이 음식으로 다른 나라를 비꼬는 건 어처구니없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영국인들은 맛없는 음식을 먹을지언정 개구리를 먹지는 않는다.

- 개구리라도 맛있으면 먹어라......... 맛있는 걸 좀 개발해서 먹어라........


p68 프랑스인들은 음식에 대해서도 너무 거만하다. 영국 음식을 너무 무시한다.

- 무시할만 하잖아........... 영국 유학 중간에 파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음식이 맛있어서 영국에 돌아가기 싫을 정도였다.


p72 나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면서 영국이 어떤 나라인지를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두 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변화의 속도다. 영국은 변화가 느리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은 30년 전에 있었던 가게를 찾기 어렵다.

- 난 얼마 안 있었어서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오가고 싶다. 일적으로 오가고 싶다. 그래야 오갈 돈이 있을 테니까. 나는 서울이 고향이다. 내가 태어난 동네는 그다지 재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 정이 가는 건 아니다. 친할머니가 아직도 그쪽에 사셔서 가끔 갈 뿐이다. 그래서 내 마음의 고향은 소튼이라고 하고 다닌다. 진짜 갈 때마다 고향에 온 느낌이다. (그래서 일 년에 한두번은 반드시 갈 거라고 했는데, 고향 가는 비용이 이렇게 비싸서야...) 아마 소튼은 30년 후에도 똑같을 것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더 내게 고향인 것 아닐까.


저런 도로는 어느 도시에나 있다. 어딜 가도 다 고만고만한 건물들이 주루륵 늘어져있는 게 똑같다. 알지도 못하는 아무 영국 동네 사진만 봐도 심장이 벌렁벌렁한 게 유류할증료 오르기 전에 예약을 했어야 하나.


p78 그런데 한국에서 살면서 나이를 먹고 보니 이제는 다시 영국으로 눈이 간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는 도시를 즐기려면 그만큼 나도 빨리 달려야 한다. (중략) 잔잔하고 평온한 영국의 속도에도 마음이 가고 있다.

- 그게 자꾸 영국을 찾게 된 이유다. 강남에서 쭉 자라서, 지금은 여의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영국인들에게 정신 없는 대도시인 런던도, 나에겐 딱 좋았다.


p146 영국에서 남자는 무조건 맥주를 마셔야 한다. 반면 여자들이 마시는 술은 와인이나 칵테일이다. 여자가 펍에서 맥주를 마신다고 하면 레즈비언이냐는 식으로 놀림을 당한다. (중략) 요즘은 런던을 중심으로 이런 문화도 조금씩 변하고 있는 추세다. 여자들이 펍에서 맥주를 마셔도 그렇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처음 듣는 얘기다. 다 맥주만 마시던데. 애초에 칵테일이나 와인은 팔지 않고 맥주만 파는 펍에 갔던 것 같기도 하다.


p244 영국인 입장에선 한국보다는 영국의 날씨가 더 좋은 것 같다. 런던 기준으로 가장 추운 1월에도 일평균 기온은 섭씨 5.3도이고, 가장 더운 달인 7월 일평균 기온은 18.5도다. (중략)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다음에 할 이야기를 알고 있다. "영국에는 비가 많이 오잖아?"

- 웃펐다. 나도 이걸 잘 알고 있다. 2년 째인 나도 지겹다... 나도 지겨운데, 영국인은 오죽할까. 이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스몰 토크를 할 줄 몰라서 그렇다. 영국인을 보면, 영국에 있다 왔다고 하면 할 말이 그거 밖에 없는 것이다.


p246 비가 자주 오는 건 맞는데 많이 오는 건 아니다. 런던 기준으로 연평균 강수량은 약 627밀리미터다. 반면 서울은 1,417밀리미터다. 강수량은 서울이 런던의 두 배가 넘는다.

- 내 말이요... 비는 서울이 훨~~~씬 많이 오는구만.


p257 그러면 꼭 "영국 음식 맛없지 않아? 피시앤칩스는 그래도 괜찮다곤 하던데"하는 식의 질문을 받는다. 내가 애국자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질문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된다. "아닌데? 되게 맛있는데? 잉글리시브렉퍼스트 몰라?" 하면서 열심히 영국 음식이 훌륭하다고 항변한다.

- 정확히는, 음식의 종류가 너무 한정적이었다. '한식'만 해도, 얼마나 많은 음식이 있나. 아무 한국인이나 붙잡고, 한식 20가지 말하라고 하면 대답할 것이다. 찌개 종류만 해도 다 나온다.


내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아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도 4일 연속으로 아침 먹으면 질린다.


p275 영국인과 한국인이 같이 살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 중 하나가 주거지의 온도다. 적절한 온도의 개념이 너무 다르다. 영국인들은 보통 겨울 실내 온도가 섭씨 18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겨울에 친구 집에서 하루 잤다가, 바로 다음 날 호텔 잡은 경험이 있다. 밖에서 입는 두꺼운 후드티를 입어도 추웠다. 지금 여의도 집은 난방을 안 틀어도 25도가 유지 되었다. 심지어 낮에는 햇빛 때문에 26, 27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영국에서 나는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라디에이터 온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매달 관리비를 내는 것이 아니어서 26도로 맞춰두고 반팔 생활하기도 했다. 만일 영국에 일하러 가게 된다면, 영국 주택은 추워서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시 가더라도 학생 기숙사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p295 영국은 집 구조상 현관 쪽에 신발장 같은 게 없다. 신발을 벗어 놓을 데가 없으니 그냥 신고 들어간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어서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별로 티가 안 난다. 그렇다고 신발을 신고 침대에 올라가지는 않는다. 그런 장면은 미국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다. 영국인은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영국에서도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카펫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도 카펫에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 바닥이 카펫인 호텔 싫다... 이 책을 읽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글을 쓰다보니 바닥이 카펫이 아니었던, 입구에 들어가기만해도 기분 좋은 향이 나던, 소튼 호텔에 가고 싶다.... 올해 안 가겠다고 선언했는데, 과연 그 마음이 언제까지 갈까.


친구 집에 처음 갔을 때, 내가 너무 기침을 해서 친구가 청소기를 들고 와서 카펫 청소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기침을 계속 하긴 했다. 예전에 알레르기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집먼지, 진드기 알레르기가 심했다.


p341 스탠드업 코미디는 전제 조건이 있다. 유머의 대상과 소재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나 사회적 약자를 웃음거리로 만들면 거센 비판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코미디언은 눈치를 보게 만든다. (중략) 한국은 형법에 명예 훼손이, 심지어 사실 적시 명예훼손까지 있는 나라다.

- 나도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연예인 하는 건 힘들어 보인다. 외국에서는 연예인들도 방송에서 마음 편히 욕하고, 성적인 얘기를 한다. 한국 방송에서는 검열당할 이야기가 내 입에서 나가진 않겠지만, 그런 환경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연예인도 사람인데, 검열이 심하고 우상화되기 때문에 결국 연예인들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p376 한국에서 살다 보면 영국은 아예 다른 문명처럼 느껴진다. 냉장고도 한국은 대형 양문형 냉장고가 표준인데, 영국은 문짝 하나짜리 작은 냉장고가 기본이다. 빨래 건조기도 낯설다. 마당에서 빨래를 말리거나 라디에이터가 있는데 왜 그런 물건이 필요하냐고 생각한다. 한국식 정수기도 마찬가지다.

- 우리 집에는 큰 냉장고 두 대와 김치냉장고 한 대가 있다. 영국 기숙사에 살 때 냉장고가 하도 손톱만해서 항상 꽉꽉 채워넣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걸 투덜댈 수는 없었던 게, 유학생 중에 방에 냉장고와 개인 주방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 책에는 안 나와있지만, 영국은 비데도 없다. 잘 사는 집이건, 못 사는 집이건, 어디든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엉덩이만 떼면 물이 자동으로 내려가는 화장실을 쓰고 있다. 이 책을 읽은 여의도 브라이튼 도서관 화장실 역시 그러하다. 확실히 한국과 영국은 다른 문명이다.


p386 앞으로는 한국의 부정적인 면도 더 많이 알려질 것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이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는 방증이다. (중략) 한국도 언젠가는 판타지의 시기를 지나 현실 속에서도 멋진 나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영국과 한국이라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두 나라에서 모두 살아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제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국인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한국이 발전하고 있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바깥에서 더 뚜드려 맞아야 더 빨리 바뀔 것이다.


마지막 문장에 나 또한 공감한다.


꽤나 많은 도시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라 찍어두었다. 나는 '사우샘프턴'이라는 표기를 하도 싫어해서, 내 책에는 '사우스햄튼'으로 표기했다. 본머스, 브리스틀, 브라이턴 모두 내게 익숙한 도시다.


어느 여름에, 꼭 스코틀랜드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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