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마다 족족 안 풀린다고 느꼈던 2026년 1분기, '실패 경험'이 아니라 '도전 경험'으로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1. 해외 페스티벌
2-3월 동안 96군데에 지원했다. 그중 하나는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메일을 보냈지만, 내가 취소했다. 메일을 받고 비행기 값을 찾아보니, 8월 초라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다음을 위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첫째는 영국 오빠가 영국에 없고, 비행기 값이 비싼 7월 말-8월 초 시즌은 지원하지 않을 거다. 더 중요한 두 번째는, 이젠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기 전까지, 영국 사우스햄튼을 제외한 지역은 지원할 필요가 없단 걸 알았다. 지역 연고가 없으면 연락이 안 온다. 무료로 재능기부하고 싶다고 영국 전역에 보냈거늘. 이런 로컬 페스티벌은, 로컬 아티스트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나는 글로벌한 언어로 너희 페스티벌에 색다른 분위기를 심어줄 거라고 했거늘.
공연팀 떨어지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고, 2017년부터 꾸준히 해오던 일이다. 그런데 해외 페스티벌을 많이 지원해 본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겹쳐서 스트레스가 컸다. 우선순위 설정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2. 한국 공연팀
'나는 싱어송라이터고, 공연으로 먹고살고 싶어!'라는 마음이다 보니, 절박함은 나날이 올라갔다. 공연팀 지원에 대한 피로도가 상당히 쌓였지만, 멈출 수가 없다. 페이 공연은 보통 4월부터 10월까지 많이 있다.
작년 11월부터 4월 초인 지금까지, 매일 아침마다 눈 뜨면 공연팀 공고를 보고 지원하던 것이 1순위 업무였는데, 한 푼도 벌지 못 했다. (일을 했는데 몇 달 동안 월급이 밀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제는 매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3번 정도로 줄이는 게 어떨까 싶다. 그 정도로 줄여도 기간 내에 놓칠 일이 없다. 노트북을 하면 괜히 즐겨찾기에 바로 보이니까 하루에 두 번, 세 번도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래서 즐겨찾기도 잘 안 보이게 치웠다.
나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취준생인 셈이다. 코로나 기간을 조금 제외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일 년에 수백 통의 메일을 보내고 살았다. 10년 뒤에는 안 이래도 될 줄 알았다. 가만히 있어도 공연 섭외가 들어오는 위치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지치지 않도록 관리해야 된다.
3. 유튜브 & 타로 모임
지쳤던 것은 '싱어송라이터' 자아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 모집 공지를 올렸을 때, 선착순 3명을 모집하는데 7시간 만에 마감되어 굉장히 기뻤다. 또 열면 사람들이 신청해 줄 거라 생각했다. 야심 차게 모임을 더 제대로 구상해서 올렸는데, 3월 모임에는 전에 참석하셨던 한 분만 신청해 주셨다. 예전에 설문조사를 올렸을 때, 서울이 아닌 사람들이 많았어서 4월 모임에는 온라인으로도 개설했는데, 이번엔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유튜브 조회수는 분명 작년 12월에는 평균 천 회였는데, 500회로 줄더니, 다음은 300회, 이제는 100회 좀 넘는다. 천 회였으면, 이천 회, 삼천 회로 쭉쭉 늘어갈 줄 알았다. 그래서 언제 한 번 엄마가 너가 매일 열심히 안 올려서 그런 거 아니냐고 했을 때 욱하고 말이 나왔다. 너무 열심히 올릴수록 맨날 영상이 올라오는 게 거슬리니까 구독을 취소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상을 올리면 바로 구독자가 한두 명씩 줄어드는 걸 보았다. 최근에는 조회수에 대한 기대를 좀 내려놓게 되었다. 10년 운영한 본 채널은 조회수가 50회도 나오지 않는다. 그에 비교하면 많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감사할 줄 알자!!!
나는 한국에서 호구조사와 질문이 기본인 대화를 못 참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자꾸 이래서 한국은 안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그래서 대신 내가 커뮤니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임을 열어보니, 정말이지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제 됐다!!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 싶었다. 너무 행복했는데, 진심으로 속상하다. 모임 공지는 평균 조회수 500회가 다시 넘을 때까지 올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4. 타로 상담
당연히 유료 상담 신청자도 거의 없었다. 유튜브로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지난 몇 달 동안 쓸~~~데 없이 스트레스받았단 걸 깨달았다.
이는 현재 공연팀에 합격을 전혀 못해서 그렇다. 유일하게 수익이라고 봐줄 만한 것이, 유튜브였으니까. 유튜브 수익이 한 달에 몇 만 원도 되지 않지만, 본업인 싱어송라이터로는 저작권료, 음원 수익으로 한 달에 몇 천 원 번다.
'타로는 그걸로 뭘 하든 전부 취미 생활이고, 나는 싱어송라이터다'라는 생각을 자주 해줄 필요가 있다. 취미 생활의 목적은 즐거움이다.
위 모든 것을 다 합친 것의 열 배 정도로 힘들었던 건 사적으로 따로 있었으나... 이젠 아예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고, 평생 동안 창원 사람을 만나면 쉽게 친해질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너무 고민하다가 군항제 마지막 날에 갔다면, 다음에는 서울에 벚꽃이 피기 전에 일찍 볼 것이다. 1년 뒤든, 2년 뒤든, 지금처럼 쭉 혼자여도, 나는 계속 내려갈 거다. 이제 도시하고 나하고의 강한 유대 관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