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상처

by 이가연

나에게도 복잡한 가정사가 있다. 가정사를 딱 10분만 들어도, 결코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말은 못 할텐데... 생각한다. 예전 상담사는 무조건 독립해서 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영국 유학이 끝나고 얻어준 집이 소음 문제로 살 수가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다시 나가 살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내가 벌이가 없는 것이다. 한달에 50만 원만 벌어도, 10월부터 살 수 있는 집이 있다. 잠실에 별장 같은 집이 하나 있는데, 계약이 10월에 끝난다고 들었다. 생필품은 집에서 다 가져오면 되기 때문에, 한 달에 50이면 생활비로 충분하지 않나 싶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쌓인 분노는, 솔직히 말해서 '너 지금 여의도 60평대 살고 있어!!!!!!'라고 외쳐도 진정이 될까 말까다. '내가 그래도 영국 유학 갔다왔다....' 생각해도 진짜 어렵다. 그... 금융 치료가 되지 않는 영혼의 상처도 있다. 나도 어지간한 건 다 금융 치료가 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안 되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그 월세 240만 원 받고 있는 집에, 혼자 먹고만 살아도 살게 해준다잖아!'라고 생각해도 분노가 내려가기 어렵다. 거길 내가 들어가 살면, 일 년에 몇천만 원씩 월세를 못 받으니 우리 집에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가서 사는 게 훨씬 낫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 만큼은 글로 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쓰시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게 보인다. 나는 종종 해리 현상이 일어난다. 가족 때문에 괴로웠던 기억은, 기억이 조각조각 난다. 무당이 신 들렸던 것마냥, 자신이 했던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한다. 하지만 정말이지, 가족처럼 어린 시절부터 외상을 입은 게 아닌,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그럴 일 없다.


종종 자다가 소리도 지른다. ADHD 약을 먹지 못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약을 먹으면, 자다가 소리 지를 때 그 악몽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 난다. 한국에 ADHD 약은 딱 두 종류이기 때문에,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다시는 먹을 수가 없을 정도로 나에겐 심각한 부작용이었다. 그 악몽 중 하나는, 아빠가 하도 쳐떄려서 112에 신고하는 장면이 있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꿈을 통해서 그 어린 시절에는 하지 못했던 걸 하니까, 저항하니까, 해소되는 거라고.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는 했다.


자다가 소리 지르는 현상은 일 년에 고작 몇 번이다. 약 부작용이 아니면, 평소엔 다행히 그렇게까지 생생하게 기억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그럴 때 옆에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년부터 이 생각을 하면서 죄책감도 들었다. 내가 해결해야될 일인데, 남이 상처를 치료해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데 이해가 가기도 한다. (나는 거의 모태솔로나 마찬가지니까..)


종종 "외롭겠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난 외로움을 모른다. 외로움은... 가만히 있을 줄 아는 사람이 느끼지 않을까. 괴로움과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항상 정신 없이 뭔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작년 8월 최면 받으면서 제대로 알았다. 최면 상담사는, '이 사람은 아빠와의 관계를 해결하라고 나타난 사람이구나' 했다. 너무 똑같다.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남긴 것까지도.


'맺어지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그를 통해서 나의 가정사를 치유 받고 싶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작년부터 들었다. 너무 부끄럽지만 그래서 '부모에 대한 결핍이 있어라 제발... 경상도잖아. 따뜻함 못 느꼈어라 제발.' 하기도 하였다. 결핍과 결핍이 만나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 결핍이 있으면 나를 찾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정말 따뜻한 사람이고, 그걸 표현하는 능력이 특출난 거 같다. 즉각적이고, 예술적이고, 깊이 있다. 그러니 '경상도잖아. 그런 표현 못 받아봤어라 제발'하는 건 당연하다... (이 내용은 작년 이 맘 때도 썼다.)


가끔 내 자신이 너무 구려보이지만, 나의 결핍과 욕망을 인정해왔던 것도 충분히 대단하다. 어차피 이 모든 과정은, 치유로 가기 위해 꼭 필요했다. 나는 더욱 성장해서 나로 인해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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