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나의 경력 중 하나에 한국어 튜터가 있다. 그만 둔 이유는, 수업 단가가 낮으니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온라인 수업인데 심지어 차 안에서 가족들이 다 있는데 영상 통화를 받은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영국 가기 전에, 영국 가서도 용돈 벌이를 하려고 1-2년 정도 했었는데 결국 영국 가선 안 했다.
오늘 한국어 수업에서는, 한국어 퀴즈와 노래 가사 프린트, 한국어 동화책, 그리고 대화 주제 카드까지 가져갔다. 그러니 2시간 수업 동안, 퀴즈 30분, 노래 가사 40분, 대화 주제 30분, 동화책 20분 식으로 진행한 셈이다. '무슨 봉사를 그렇게 열심히 수업 준비해 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안 하면 2시간 수업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내가 힘들다.
선생님이 한국어 교재 한 권 진도를 쭉 나가는 것보다, 여러 활동을 준비해와서 하는 게 훨씬 재밌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ADHD라 아이들 수업이 잘 맞는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장점으로 쓰면 얼마든지 이렇게 장점이 된다. 언어 학습은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머리에 남지 않는다. 나는 외국어를 익히던 모든 날 모든 순간 재미있기 때문에 했다.
최근에 뇌과학 기반 외국어 학습법에 대한 책을 읽었다. 책 보고 공부하는 것보다 애인을 사귀면 외국어가 금방 늘 거라고 누구나 아는 이유는, 애인은 나와 관련 있는 대화를 하고, 감정을 나누기 때문이다.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배우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으면 금방 잊는다. 이 예시를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마산 창원에 대한 정보를 왜 이렇게 잘 기억할까. '난 너를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나중에 지역 문화 차이를 줄이기 위해 미리 공부해뒀어!!!'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동기가 있으니, 책을 읽는 족족 머리에 다 남는다.
온라인 한국어 튜터를 하면서, '한국어 가르치는 게 나랑 안 맞는 건가' 속상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성인이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정말 멀쩡하게 수업해놓고, 수업 후기로 엄청난 악플을 달아서 충격 받은 경험도 있다. 그런 경험은, 내가 ADHD만 아니었어도 사람 표정과 사회적 신호를 읽어서 저런 말이 안 나오도록 가능했을까, 아니면 저 사람이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될 걸 안 한 걸까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게 ADHD인을 굉장히 힘들게 한다. 그냥 욕하면 될 일을, 내 문제인가 싶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로는 상대방 잘못인 걸 안다. 하지만 내가 기본적인 눈치를 못 채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성인은, 투명하고도 맑은 사람만 만나야 되고, 아이들은 그냥 다 좋다. 성인들에게 상처 받은 마음이, 아이들을 많이 만날수록 치유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하고 엘레베이터만 타면 바로 팍 드는 생각이 있다. 가르치는 2시간 동안 얼마나 몰입했는지, 그 2시간 동안은 특정 누구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는 걸, 엘레베이터부터 학교 정문 밖을 나갈 때까지 느끼며 제일 슬프다. 마취에서 깬 느낌이랄까. 그제야 몰아치는 것이다. 작년 여름, 이 기관에서 봉사를 시작했을 때부터 느꼈다. 아침에 눈 떠서 잘 때까지 한 사람 생각이 디폴트로 뇌에 돌아가서, 딱 2시간만 자유라는 걸 그때 느낀다.
그건 좀 슬픈 얘기긴 하다만, 그만큼 나에게 몰입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 봉사다. 글을 쓰든, 사진을 찍히든, 타로를 하든, 내가 하는 기타 모든 활동은 다 디폴트로 한 사람 생각이 백그라운드에 돌아가는데, 봉사로 가르칠 때만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나에게 의미가 큰 거 같다. 봉사는 2016년부터 계속 그냥 아이들을 사랑해서 해오던 일이라서 그렇다.
그러니 봉사처에서는 봉사자인 나를 감사하게 생각해주시지만, 나야말로 작년에 이 봉사처를 만나서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약도 없는 상사병 감옥, 지옥에 산다고 느끼던 시절, 오아시스 같은 2시간이었다.
지금은 행복 그 자체다. 벌써 다음주 수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