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생활 중 가장 쉽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했던 일은 학위 취득이었다. 아무리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해도 학위를 제대로 취득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마지막 리사이틀 점수를 제외하곤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다. 다른 과목은 전부 성적이 나온 상태에서 9월에 치른 리사이틀 점수를 기다렸다. 12월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이미 비행기며 호텔까지 다 예약해 둔 상태였다. 그런데 11월 말이 되도록, 마지막 과목 점수가 나오지 않아 초조했다. 만약 50점을 넘지 못해 'fail'이 나오면 재시험 기회는 있는지 걱정되었다. 아무리 불필요한 걱정임을 알았어도 워낙 일처리가 늦는 영국 탓에 속이 타들어갔다.
결국 모든 과목을 잘 마쳤고 'Merit' 등급과 함께 졸업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패스 등급이 'Distinction', 'Merit', 'Pass'로 나뉘며, 그중 Merit은 두 번째 등급이다. 한 과목이라도 최고 등급인 'Distinction'을 받는 건 드문 일이었다.
다시 영국 가는 비행기 탈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탈리아를 거쳐 영국 가는 일정을 짰는데, 베네치아 공항에서 드디어 영국 간다는 생각에 방방 뛰고 싶었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영국이 보고 싶었다.
졸업식은 영국에서 일정 중 가장 마지막 일정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날씨조차도 완벽했다. 5일 내내 해 한번 구경할 수 없이 안개가 자욱했는데 신기하게도 졸업식날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 졸업식은 3일 동안 진행 되었고 내가 마지막날이었다. 친구는 전날이었는데, 나는 맑은 날에 졸업식을 해서 부럽다고 했다.
졸업식 시작은 4시 반이었는데, 안타깝게도 4시 반이면 영국 겨울엔 해가 이미 져서 거의 밤이다. 2시간 전부터 졸업 가운 픽업이 가능했는데, 졸업식 시작 전에 학교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왕복 이동 시간을 고려했을 때 캠퍼스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이었다. 친구와 함께 미션이 부여된 셈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 내가 주로 가던 중국 식당 앞 건물, 콘서트홀, 도서관과 같은 주요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30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이미 캠퍼스 어디 어디에서 찍을지 명확하게 그려졌기에 바로바로 이동이 가능했다. 캠퍼스에는 사람이 정말 우리 밖에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다른 졸업생들은 가운을 받으면 졸업식이 열리는 그 장소 앞에서만 사진을 찍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학교 캠퍼스에서 사진 찍는 게 제일 기대가 되었던 터라 포기할 수 없었다.
"괜찮아! 우버 잡으면 졸업식장까지 10분이야"라고 말했는데 웬걸, 우버가 잡히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질 않았다. 영국에선 매우 흔한 일이다. 분명 5분 뒤에 온다고 했는데 15분이 지나도 안 오는 일은 놀랍지도 않다. 그렇지만 그날만큼은 큰일 날 일이었다. 졸업식장 앞에서도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마음이 급했다. 내 졸업식은 왜 4시 반 타임에 걸렸나 싶었다. 겨우겨우 졸업식장에 도착하자 스태프들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사진은 포기할 수 없기에 급하게 찍는데 스탭이 진짜 이제는 들어가야 한다고 외쳤다. 겨우 몇 장 찍고는 졸업식장에 입성했다.
하지만 얼마나 기다리던 졸업식의 순간인가. 다들 중국에서 오는 터라, 많이 못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동기들이 많이 와있었다. 학교에서 왜 장소를 빌려서 졸업식을 하는지 이해가 될 만큼, 장소가 크고 좋았다. 동기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가족이 없어도 가족 같은 친구가 내 졸업식을 보러 와주고 사진도 많이 찍어줘서, 무사히 졸업식을 마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혼자서 이룰 수 있던 졸업이 결코 아니었다. 반 전체가 나 빼고 다 중국인인데도 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친한 중국인 친구들이 있었고, 가족이 영국에 없어도 모든 걸 다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영국인 친구가 있었다. 어려움을 상의할 수 있는 교수님이 있었고, 언제든지 힘들 때마다 찾아가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학생처 웰빙팀이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졸업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2024년 중 가장 기억에 남을 행복한 순간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한 해였지만, 그 와중에도 내 곁을 끝까지 지켜줬던 사람들이 있다. 졸업식은 학위 과정을 끝내는 세리머니기도 했지만, 지난 과거를 딛고 새로운 앞날을 향해 나아가는 의식이었다.
여러 차례 휴학으로 16학번이던 내가 2023년 8월에 학사 학위를 취득하곤 9월에 영국 대학원에 입학했다. 27살, 성인이 되고 처음 학생 신분을 벗어났다. 하지만 사우스햄튼 대학이 내 마지막 학교일 거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조금은 무섭지만, 그립지만, 나의 앞으로 앞날을 나 스스로부터 응원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