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학을 담은 나의 세 번째 에세이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챕터인 4부를 검토하는데, 문득 학교 홍보 영상 관련 에피소드가 빠진 걸 깨달았다. 이 중요한 에피소드를 왜 안 썼지? 하고 생각해 보니 그 홍보 영상 2월 초쯤 찍었다. 그땐 정신줄 사우스햄튼 바닷가에 안 빠트리고 산 것만 해도 잘했다.
1월 리사이틀 준비로 정신없던 중, 학교에서 메일이 왔다. 음악학부 학생의 일상을 학교 홍보 영상에 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에 온 뒤로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자주 올려왔는데, 학교 공식 채널과 협업이라니 무척 흥미로웠다. 게다가 단독 출연하는 영상이라니 무척 설렜다.
촬영은 총 세 파트로 나뉘었고, 첫 번째는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며 소개하는 장면이었다. 거의 매일 점심을 해결하던 단골 중국 식당은 소개하려다 뺐다. 이미 겉모습만 봐도 중국인처럼 보이는데, 중국 식당까지 소개하면 진짜 중국인으로 오해받을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는 10시부터 12시, 그리고 3시부터 6시까지 내가 수업을 듣는 모습을 촬영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초상권 이용 동의서에 서명해야 했다. 수업 내내 마이크를 차고, 카메라가 계속 나를 비췄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설레는 긴장감을 마음껏 느꼈다.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카메라가 내내 자신만 찍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계속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수들이 예능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기서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연예인이나 가수처럼 남에게 보이는 직업을 하길 타고났다고 느낀다.
첫 수업이 끝난 뒤, 연습실에서 인터뷰하고 노래하는 내 모습을 촬영했다. 촬영을 위해 넓은 연습실도 미리 대여해 두었다. 학교 연습실은 음악학부 학생들만 용할 수 있었다. 학교에는 다양한 연습실이 있지만, 넓고 쾌적한 공간은 경쟁이 치열해 예약하기 어려웠다. 좋은 연습실은 내가 이 학교를 좋아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인터뷰에서는 Global Talent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선택한 이야기, 평일과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 등 미래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덤으로, 당시 가장 최근에 발매했던 곡인 '착해 빠진 게 아냐'를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장면도 담겼다.
그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두 번째 수업에서 'Warm-up' 발표를 할 때였다. 그 수업은 앙상블 티칭 수업이었고, 졸업 후 학생들 가르칠 때 활용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강의실 앞에서 발표하는 시간이 포함돼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준비된 발표를 하는 걸 워낙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걸 알기에, 이 역시 기회가 된다면 매주 하고 싶었다.
그 밖에도 캠퍼스 투어와 인터뷰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교에 기여했다. 교내외를 통틀어 나처럼 활동하는 음악학부 대학원생이나 한국인은 없었다. 그래서 음악학부나 한국인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는데, 어쩌면 그것이 영국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존재가 어딘가에 쓰이고, 나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느끼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