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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남는 방법

by 이가연

나는 평생 신체적, 정신적 폭력 위협에 시달리며 살았다. 지금도 그러하다. 혼자 살았던 시기도 있었으니 평생이란 말을 빼겠다. 기억나는 건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때부턴 내가 남자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얼마 전 시도했던 ADHD 약의 부작용은 악몽을 꾸다가 자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였다. 그 약 때문에 일주일에 3번을, 나의 생물학적 부에게 처맞거나, 처맞으려 해서 경찰 신고하거나, 집에 있는 피아노를 던지려 하는 모습을 보는 꿈을 꾸었다. 그 부작용으로 그 약은 먹지 못하게 되었다.


어떤 글쓰기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글쓰기는 트라우마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그렇게 해외여행도 혼자 많이 다니고, 영국 유학 갔다 오면서도 한 번도 사본적 없는 호신용 스프레이, 방문 잠금장치도 얼마 전 구매했다.


어제도 급히 모텔에서 잤다. 전처럼 윗도리는 잠옷, 바지는 추리닝에 패딩 지퍼까지 잠그고, 주머니에 핸드폰 충전기를 넣고 나왔다. 모텔에서 팩을 주길래, 이는 닦고 잘 수 있었다. 밤 12시가 다된 시간인데도, 엄마도 나보고 어디냐고 오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이번엔 숙소 구하기에 실패해서, 냄새도 별로고 침대도 별로고 다 별로라 내 방에서 주무시라 했다.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살면서 살아본 집 중에 가장 큰 60평대 집에 살고 있다. 여의도역까지 걸어서 6분, 한강까지 걸어서 15분이다. 이름 말하면 사람들이 알만한데 산다. 그렇지만 자꾸 급히 잠옷 바람에 뛰쳐나와서 모텔에서 자야 한다면, 그게 좋은 집에 살고 있는 건가. 좋은 동네에 살고, 유학도 다녀오고, 당장 돈을 벌지 않아도 경제적 어려움이 없어도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책에, 디지털 피아노에, 내 방 참 쾌적하다. 그런데 여길 내 집이라고 부르기엔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순간의 평안과 행복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글을 쓰면 기분이 나아진다. 타로를 보고, 점성술 주사위를 굴리면 편안해진다. 한국엔 맛있는 게 많으니,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영국 가고 싶다'라는 나의 생각과 말속에는, 참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국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마음 상태를 한국이 충족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런 글을 쓰지도 못했다. 내가 어떤 감정인지 인정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젠 글로 쓰고 있다. 지금은 우울이나 분노도 잘 느껴지지 않고, 그냥 덤덤하다. 아무도 상황을 대신 바꿔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밥 먹고, 글 쓰고, 음악 듣는 게 살아남는 방법임을 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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