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신부님 같은 오빠가 있는데 이 오빠하고는 싸워본 적이 없다. 나 혼자서 막 화내본 적은 몇 번 있다. 그것도 벌써 한참 전 일이다. 이 오빠를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내가 화를 낼 때 더 부채질을 해서 그냥 화가 아니라 분노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 오빠는, 일단 들었다. 일단 듣고 그걸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화가 분노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빠르게 가라앉았다. 내가 하는 말이 본인을 공격하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오빠한테 뭐 때문에 화를 내본 적이 있는지 지금은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몇 번 약간 이성을 잃고 카톡으로 쏟아낸 적이 있단 어렴풋한 조각만 남아있다. 다른 그 모든 한국 사람들과 다르게 일단 듣고 받아줬다는 긍정적 데이터가 남았다.
이 사람은 내가 화를 낸다면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란 걸 알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걸 아니, 건강한 관계가 가능하다. 내가 영어로 화를 낼 때도 마찬가지다. 영어로 화냈을 땐, 친구들이 사과하고 받아준 데이터만 떠오른다. 얼마 전에도 영국인 친구에게 엄청 뭐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걔가 잘못했어도 말 좀 심하게 한 거 같아서 불안했다. 며칠 뒤 온 장문의 문자에 "sorry"만 7번 넘게 들어가 있었다. 그 사과를 받고 생각해보니, 한국인 기준에서나 심하게 말한거지, 욕을 한 것도, 공격한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할 말 다 한 거였다. 그 친구 역시 내 말을 공격으로 받지 않았던 거다.
이 오빠는 5살 때부터 영국에서 산 영국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뿌리가 한국인이어도 영국인 그들과 똑같다. 그래서 내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사람 두 명 모두 영국인이다, 영국에 있다고 말하는 거다.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sorry"할 정도로 사과를 많이 하는 나라에서 왔다보니, 한국은 사과를 해야할 상황에도 절대 안 하는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분명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하는 한국인 상대방의 마음 속에는, 미안한 마음도 들어있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이미 화가 많이 나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변명으로만 들리고 저 사람이 '미안하다'라는 정확한 말로 뱉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미안함을 느낀다는 생각이 추호도 안 든다. ADHD는 상대방의 숨어있는 뉘앙스를 못 알아챈다. 상대방이 미안해하지도 않는다는 생각에 괘씸해서 있는 힘껏 공격하게 되고 관계가 한 번에 끝나버린다. 그것 역시 ADHD 충동성 때문이다...
한국 가정환경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된다. 동양인 부모와 서양인 부모는 너무나도 다르다. 한국인들은 어릴 때 집에서 격려하는 말과, 사랑이 가득한 말을 듣고 자랐을 확률이 낮다. 부모가 자식을 너무도 공격한다. 서양인 관점에서 봤을 때, 아동 폭력인 가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줄줄 모르고 건강한 관계 형성이 어렵다.
내가 아무리 크게 분노해도 1,2시간 넘게 그러진 않는다. 어지간한 분노는 더 건들지만 않으면 상당히 빠르게 그 감정이 사라진다. 그런데 한국말로 그런 경우는 오빠 밖에 못 봤다. 엄연히 그래도 한국인인데, 한국적인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마음을 줬기 때문에 그만큼 서운하고 슬퍼서 감정이 쏟아져 나온다. 서운함이란 감정은 사실 해결이 비교적 쉬운데, 한국인들은 그걸 분노로 달려가게 만든다. 아끼던 사람이 아니면 화도 분노도 나오지 않는다.
영국은 나의 ADHD 장점이 무수히 나오게 하고, 한국은 약점이 종종 나오게 해서 마음이 아프다. '눈치'라는 단어가 존재하게 만들지 말고, 직접 표현하는 게 익숙한 사회였으면 좋겠다. 그 누구에게도 분노하고 싶지 않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