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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에서 배운 것 (2)

by 이가연

네 번째 상대는 잘생겼었다. 소개팅을 하며 만날 수 있는 남자 외모 상위 5% 안에 들었을 거다. 중간에 화장실 가면서 오빠한테 "진짜 XX 닮았어!!!"하고 카톡 보낸 기억도 난다.


얼마나 오죽 대화가 안 통했으면. 그동안 네 번의 소개팅을 하면서 대화가 조금이라도 통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이 분과 대화가 안 통했던 게 제일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얼굴에 내가 오죽했으면. 그분은 소개팅 애프터를 거절당한 게 살아생전 처음이셨을 것 같다.


한국인 20명 중에 19명은 나를 정말 불편하게 한단 걸 알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니다. 오빠도 한국인을 많이 만나지만 내가 왜 대화를 그렇게 하는 사람들만 주로 만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매번 신기해한다.


다섯 번째는 내가 너무 미안하다. 사람이 서로 느끼는 건 비슷하기에 그분도 내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갔단 걸 아셨을 거다. 거절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집에 와서 내가 막 우니까 엄마가, 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랑 잘 맞다고 느끼니 그런 거 아니냐며, 잘 됐다고 잘해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더 있지만 이쯤 하겠다. 위에 언급한 소개팅 상대 모두 이름은 물론, 얼굴도 거의 기억 안 나서 지나가다 마주쳐도 못 알아본다. 어디서 만났고 대화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만 기억난다. 이렇게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억이 금방 휘발됐을 거다.


살면서 1:1로 한 번 만나고 끝난 사람이 남녀노소 수백 명인데, 왜 아직도 실패와 상처를 겪을까. 기록할 가치도 없다고 느끼니 빨리 잊으려고 뇌가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리 잊어버리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오답 노트를 하지 않고 넘겨버리면, 다음에 또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비슷한 일을 겪는다. 사생활 보호 때문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각각의 사람들과 대화를 곱씹어보면 다음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어차피 맞지 않는 사람이니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1월부터 원하던 새 출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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