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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

by 이가연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의 결함이 숨겨지기를 바란다. 이는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로 인해 고통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엄마도 나의 ADHD 증상들로 괴로워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어릴 때부터 때때로, 꽤나 자주, 대화 중 내가 말을 꺼낸 거 자체가 실수였다고 후회하게 되었다. 그래서 소개팅 다닐 때도 대화만 잘 통하면 된다고 노래를 불렀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대화로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거 같아서. '대체 뭘 어떻게 해줘야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면 말해주고 싶다. 대화하면 된다고.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고통을 느낀다면 말해달라고.


진정한 영웅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깊은 고통과 드높은 희망을 동시에 마주하는 사람이다.

내가 가장 깊은 고통과 드높은 희망을 동시에 마주했을 땐 영국에서였다.


자유를 얻었다는 증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ADHD임을 진단받고 바로 글로 써 내려가니 자유로웠다.

가정에서 있었던 아픈 얘기조차도 마음껏 쓰니 자유로웠다.

공식 유튜브 채널이란 생각에 사렸으나 올해부터 마음껏 사적인 마음을 드러내니 자유로워졌다.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은 특별하고 드문 예술이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자세히 조사하고, 모든 것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며, 심지어 약점조차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 과정은 큰 노력과 일련의 작업을 요구하며, 불가피한 결점은 숨기거나 숭고한 것으로 재해석된다.

완전 내 얘기잖아? ADHD 진단을 받은 순간, 사명감이 생겼다. 나의 강점과 약점을 통해 ADHD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면, ADHD 약점이 불가피한 결점이지만 숭고하다고 생각할 거라 믿다. 예를 들어, 생각나는 말을 다 그때그때 내뱉어서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도 누군가에겐 매력이다. ADHD 진단율이 1프로 미만이니까, 100명 중에 99명은 그 상황에서 그런 말 안 하는데 나는 하니까 신기하고 재밌을 때도 있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진지한 생각'은 삐걱거리는 기계와 같아서 쉽게 작동하지 않는다.

누가 나한테 "진지한 사람 누가 좋아해."라고 했을 때 반사적으로 '내가 좋아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나는 네가 진지한 게 좋았는데. 그렇다면 내가 "감정 요동치고 어쩌다가 무슨 말 할지 모르는 사람 누가 좋아해."라고 해도 그래서 좋아해 줄 누군가도 있을까. 이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에 너 같이 솔직한 사람이 좋다 하면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관객으로서 바라보는지, 아니면 모든 혼자서 하는 예술처럼 세상을 잊고 몰입하는지에 따라 나뉜다.

세상을 잊고 몰입한다는 말이 공감된다. 내가 자작곡을 쓸 때는, 그냥 뱉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가사가 어떻고 멜로디가 어떻고 이걸 듣는 청중이 어떨 것인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음원 발매를 준비할 때가 되어서야, 이 노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보다 자연을 더 사랑하며,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사실.

모임 나가거나 사람 만나는 거 참 좋아하던 나인데, 올해부터 예술에 빠지더나 사람을 잘 안 만난다. 그러니 편안해졌다. 자연과 예술은 온전히 나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귀한 이상에 걸맞은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소울 메이트를 만나 사랑하는 거다. 그걸 실현시키는데 필요한 마음의 준비가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재작년의 나는 아니었다. 아마 이젠 비슷한 사람이 나를 알아볼 거다.


인류 혐오는 인류애에 지나친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다.

한국인 혐오는 한국인에 지나치게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다. 이 감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풍선처럼 커졌다. 이 감정은 애증이라, 그만큼 사랑도 커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를 단순히, 한국인 싫어하고 외국인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하는 게 참 싫었다.


대중을 움직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과 의도를 명확하고 단순화된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유명한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이유도, 나는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고, 말하는 거나 노래하는 거나 성격이 똑같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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