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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ADHD와 나

순수해 보인다는 말

ADHD 만세

by 이가연

"가연이는 순수해."라는 말을 몇 번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성인이고 19금 그런 거 알 거 다 아는데 왜 그러는 거지?'싶고 그게 무슨 말 뜻인지 몰라서 오빠한테 물어봤던 적이 있다. 감정 표현이 솔직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럼 "가연이는 감정 표현이 솔직해서 좋아."라고 하면 되지 왜 의도를 알아들을 수 없게 말하지. 몇 년 전에는 그 뉘앙스를 "가연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무구한 거 같애."식으로 받아들인 거 같다.


ADHD 예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어!"라고 오히려 화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구나. 내가 그렇게 말한 거는 그 뜻이 아니라 이런 뜻이야."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행동에서 티가 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좋으면 가만히 걸어가는 게 아니라, 폴짝폴짝 뛰면서 가기도 한다. 초등 저학년도 아니고 그렇게 뛰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또 싱글 생글 웃으면서 걷기도 하고, 오열하면서 걷기도 한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서일까, 한 번은 어떤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가는 게 참 보기 좋아요."라고 한 적도 있다.


이걸 나쁘게 말하면 사회적인 기준에서 소위 '어른스럽게' 감정을 통제하는 거는 0점이다. 사회적 가면을 써야 하는 상황이 필요하다면, 안 할 거다. 그러니 내가 예술가가 된 건, 운명이다. 일반 직종을 꿈꿨으면 아주 힘들 뻔했다. 일부러 튀려는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좋으면 즉각 반응하는건데. 영어에는 없는 '나댄다'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이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도 쭉 예술해야 그나마 한국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자잘한 것에도 그만큼 신나고 감동한다. 영국에서 밤에 집에 들어가다가, 달이 예뻐서 한참 쳐다보고 좋아한 적이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 지금 달 보고 있는 거냐며 웃어주고 갔다. 남들이 그냥 지나치는 것에도 감동하고,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성향이 난 참 좋다.


또한 애기들 가르칠 때, 애들도 그런 나를 알아봤는지 굉장히 좋아해줬다. 애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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