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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면 되는 걸 하라

by 이가연

한국에서 어느 모임에 가도 불쾌할 확률이 높았다. 영국에서 모임이 즐거웠던 이유는, 영어를 잘한다는 자부심 덕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늘 항상 너무 노력하고 살았는데, 상대방은 영문도 모르고 나를 떠나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무리 아직 맞는 약을 찾지 못했다 한들, ADHD 진단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아무리 해도 안 되던 게 맞았구나...'하며 좌절하는 게 아니라, 한계를 인정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


지나간 인연들, 그들은 알았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내가 ADHD가 아니었어도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됐던 사람들이었다. 지금 오빠나 영국인 친구가 내가 ADHD인 걸 어디 알았던가. 그들도 내가 가끔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을 거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내색하는 걸 못 봤다. 항상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봐줬다.


분명 남과 많이 다르다. 이 사회를 살아나가려면 지속적으로 치료와 훈련이 필요하고, 나와 친해지고 관계를 맺으려면 '품어줄 수 있는 그릇이 넓은 사람'이어야 한다. ADHD는 또래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고, 어리거나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친구한다고 한다. 전두엽 발달이 또래보다 늦어서 실제 나이가 27살이라면, 수행 연령은 18살이다. 실제로 영국인 친구는 나보다 4살 어리고, 오빠는 나보다 10살 많다.


나에게 상처줬던 사람들은 나이차가 2살 이하였다. 그들의 마음 속에 내가,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마음은 따뜻하고 능력 있던 사람이었다고 기억 되길 바란다. 한 번 그렇게 틀어진 관계는, 다시 맺어져도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내가 ADHD라 그렇다고 설명해야할 거다.


특히나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극도로 미화되어 있는데, 그 10월과 11월, 나는 늘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으면 어쩌나 불안했고, 무엇보다 내가 있는 그대로 존중 받고 이해 받는 느낌이 아니라, 나는 바뀌어야하는 사람이라는 압박을 느꼈다. 특히 그렇게 나를 멀리하려고 눈치를 줬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거라했던 말은, 마치 시각장애인에게 "눈 크게 뜨면 보일 거 아냐!"라고 소리쳤던 거 같아서, 잊기 어려울 거 같다. 가슴에 박힌 말들을 1년 3개월 동안 혼자서 곱씹고 곱씹었던 그 상처가, 극복이 될까. 가정에서 부모가 상처를 너무 많이 줘서, 나한테 상처를 주는 게 사랑으로 느껴졌나보다. 상처와 애증의 수준이 거의 엄마와 같아서, 안 되겠다.


영국인 친구와 오빠에게 고마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눈치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고 멋있는 사람이란 걸 지속적으로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들과 관계에서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 없이 자연스러웠다. 이처럼 극도로 소수의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으면, 분명 나는 정말 가슴 충만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 의식에서든 무의식에서든 나를 뭔가 고쳐야될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과 내가 관계를 맺고싶어서 안달복달하면, 쉽게 불행해진다.


그런 가족 같은 친구가 영국이든 전세계 어디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걸 증명한다. 오빠는 늘 말한다. 내가 오빠 같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생겨야 마땅하다고. 영국에서 둘을 만난만큼, 한국은 아닌 거 같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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