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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이야기

테일러 스위프트 (1)

by 이가연

이 책은 2009년부터 테일러 스위프트가 방송에서 한 말을 바탕으로 한다.



작곡을 시작한 이유가 뭐냐면, 학교에서 힘든 하루를 보냈거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마다 그냥 혼자 이런 말을 하게 됐어요. "괜찮아, 언젠가 이걸로 곡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뇌를 훈련시켰던 거 같아요. "아파? 아픔에 대해서 노래를 쓰자. 뭐야, 주체 못 할 감정? 그걸로 노래를 만들자."

나도 2012년부터 쭉 그래왔다. 중 3 때 처음 짝사랑을 제대로 했다. 반에 친구는 한 명도 없었고 옆반을 돌아다녀야 학교 가서 말 한마디라도 하고 올 수 있었다. 반 애들은 못 됐고, 짝남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그 시기, 첫 자작곡이 탄생했다.


싱어송라이터로서 낯이 두꺼워지지는 못할 것 같아요. 방호벽을 둘러칠 수는 없거든요. 감정을 느끼는 게 제 일이니까요.

마지막 말이 뭉클하게 와닿았다. 감정을 느끼고 그게 음악이든 영상이든 글이든 무엇이든 표현하는 게 내 일이다.


저한테는 남자들에 대한 노래를 쓰고 이름을 붙이는 버릇이 있어요. 아무래도 고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처음 곡을 쓴 계기가 이래서 중요한 거 같다. 당사자에게 못할 말을 곡으로 하게 되는 건 평생 갈 거 같다.


'Should've Said No'에 남자 이름을 반복해서 암호로 넣었어요. 성은 빼고 이름만 넣었지만 모두 누군지 알아차렸죠. 그 남자한테서 문자도 여러 번 받았어요.

앞으로도 난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찬성아.


제 노래들에 나쁘게 나오는 게 싫다면 나쁜 짓을 안 하면 되잖아요.

(박수)


어떤 감정을 느꼈다면, 다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제 경우엔, 노래의 주인공과 더는 사귀지 않더라도 행복한 노래를 연주할 때는 여전히 행복한 감정을 느껴요. 그 감정이 한때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축하한달까요?

연애해서 곡 써본 적도 없고, 대부분이 짝사랑하다가 아파서 쓴 곡이지만, 나도 짝사랑의 설렘을 담은 곡들도 있다. 잘 안 부르기는 한다.


'Red' 앨범 수록곡들 대부분에 등장하는 남자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방금 앨범 들었는데, 나한테 정말 달콤 씁쓸한 경험이었어. 사진첩을 넘겨보는 기분이더라." 좋았어요. 다른 어떤 남자한테서 온, 다짜고짜 욕을 퍼붓는 미친 메일보다는 훨씬 좋았죠. 끔찍하게 끝났더라도 그전까지는 멋지고 근사했던 사랑을 훨씬 성숙하게 돌아보는 시선이잖아요. 둘 다 그 연애로 상처를 받았어요. 다만 둘 중 한 사람이 하필 싱어송라이터였던 거예요.

사실 요즘 들어 걔가 신곡 내는 거 욕 하고 싶어서 메일로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가능성 매우 낮은 불안임을 안다. 잘 생각해 보면, 테일러가 말한 저 두 경우 중 전자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둘 다 그 일로 힘들었을 거다.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 알 테니.


남자친구가 반드시 필요한 여자라서 남자가 없어지면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대체해야 한다면, 남자들이 늘 끝도 없이 강물처럼 흘러가게 되잖아요. 그런 여자는 결코 되고 싶지 않아요. 사랑에 빠질 때는 그게 정말 귀하고 대단한 사건이라고 여기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그냥 두근거리는 연애 감정으로는 누구 안 만나겠다고, 저 사람 대신에 총도 맞을 수 있을 거 아니면 안 만난다는 선언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러면 귀하고 대단한 사건이다.


진짜 사랑은 그냥 버텨요. 진짜 사랑은 지속되죠. 진짜 사랑은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거예요.

챕터 4. 그런 너라도


작사 작곡을 사랑하는 이유는, 기억을 보존하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한때 품었던 감정을 액자 프레임으로 두르는 것처럼 말이죠.

기억 보존을 정말 좋아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웹소설 '이 사랑'을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한시라도 더 생생할 때 글로 남기고 싶어서. 네가 날 잊더라도, 난 널 잊고 싶지 않아서.


저한테 노래는 병에 밀봉한 편지 같아요. 세상에 떠나보내면 제 마음이 향하는 그 사람이 언젠가 진심을 알게 될지도 몰라요.

내 유튜브고 브런치고 안 보겠지만, 앨범은 언젠가 들을 거라 믿는다. 그게 바로 발매 직후든, 몇 년 후든. 내가 자기 때문에 쓴 노래가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이니, 언젠가 한 번쯤 들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믿음 없이 신곡 작업 못했다.


창의성은 영감을 받아 벼락이 내리치듯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이 오면 힘든 일을 마다 앉는 직업윤리를 가지고 책상에 앉아서 그걸 열심히 받아 적는 거예요.

직업 정신. 이걸 제대로 느낀 건, 작년 1월 '사.말.꺼'를 썼을 때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족이 죽지 않는 이상, 그때보다 더 큰 심장 통증은 안 느낄 거 같다. 그래도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영국 가기 전까지 수년간 곡을 한두 곡 밖에 못 썼기 때문에, 얼마나 귀중한 영감인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받아 적는 거, 그거 정말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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