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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나의 직업은

by 이가연

ADHD와 설명

내가 자꾸 말만 하면 ADHD 얘기 꺼내는 게 스스로 변명하는 거 같은 기분이라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이 따끔하게 그게 왜 변명이냐. 그건 설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맞다.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알려주는 거다. 알았으면 나한테 안 그랬을 사람들이 천지삐까리다.


자폐와 공통점이 많은 게 ADHD인데, 차라리 내가 자폐였으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줬을까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계속 글을 쓰고 또 쓴다.



불가하다

'어렵습니다'라고 하면 나도 모르게 어려운데 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머리로는 안다. 안 된다는 걸 부드럽게 말한 것임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봐 아예 안 되는 건 '불가하다' 하고 어려운 건 진짜 '어렵다'라고 한다. 그게 사실 맞는 건데 이것도 항상 거짓 없음을 추구하는 ADHD 영향인 듯싶다.



무례함

외국은 30초 이내로 바꿀 수 없는 걸 지적하면 무례해요.

외국은 30초 이내로 바꿀 수 없는 걸 지적하면 무례해요.

외국은 30초 이내로 바꿀 수 없는 걸 지적하면 무례해요.

이 문장이 '그 누구와 대화하더라도' 나올 수 있지 않다면

한국 못 살 거 같다.



기타

설문조사 '귀하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질문에 '남자, 여자'만 있으면 역시 한국인 게 실감 나서 기분이 언짢다. 학교에서 교수가 저렇게 설문조사를 만들었다간, 일단 그럴 일도 없을뿐더러 컴플레인 감이다.



트라우마

대인 관계를 칼 같이 자르는 건 트라우마 반응이다.

냉정한 게 아니라 슬픈 일이다.



나의 직업은

아프다.

아프니까 집에서 글 더 많이 써야지.

이쯤 되면 홈 프로텍터가 아니라 작가 맞는 거 같다.



제3 국

한국에선 "영국이었으면~"하고 영국에선 "한국이었으면~"하는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일본 가야 한다.



5글자를 보낼 수 있다면

2013년 : 그냥 자퇴해

2014년 : 제발 보컬해

2015년 : 그냥 영국 가

2018년 : 네 잘못 아냐

2019년 : 그 병원 바꿔

(ADHD 진단은 빨리 받을수록 좋았다. 오진으로, 약 부작용으로, 살만 쪄서 더 스트레스 왕창 받았다.)

2023년 : 웨스트 런던

(그동안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 학교를 갔었어도 책도 내고 곡도 쓰고 다 했을 거다. 오빠는 런던에 살면 어차피 알게 됐을 거다.)

2024년 : 기숙사 나와

(기숙사 나와서 새로 방을 구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한국 와서 돈은 돈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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