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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by 이가연

나에 대해 자랑스러운 점 하나는, 고마운 걸 안 잊어버리고 계속 마음에 간직한다. 친한 친구들이 위기에 처했거나 나를 필요로 한다면, 거기가 마카오든 베트남이든 영국이든 바로 여권만 들고 갈 나다.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순 없지만, 내가 가진 모든 능력, 6개 국어, 타로, 음악 등 다 나눌 수 있다.


예전에 드라마 '술꾼 도시 여자들' 유튜브 클립에서, 저런 친구가 현실에 어딨냐고 하는 댓글이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항상 있었는데,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다니... 다들 외롭겠다. 중학교 때부터 집에서 핸드폰도 뺏기고 쫓겨나면 갈 데가 없으니, 애들 번호 3-4명 정도 외워서 공중전화로 전화하곤 했다.


ADHD인은 상처받은 순간을 그러고 싶지 않아도 수십 번, 몇 년을 곱씹게 된다. 반면, 고마웠던 순간도 계속 떠오른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별 도움도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나에게는 콱 심장에 박혀 두고두고 고맙다. 도저히 얘가 없었더라면 영국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순간을 함께한 친구, 신부님인지 상담사인지 엄청난 역할을 해주던 오빠, 그리고 한국 돌아오던 마지막 순간까지 나보다 동생인데도 언니처럼 챙겨주던 친구, 그들이 지금 중국, 베트남, 영국에 있다.


영국에선 '유학생인데도 로컬 커뮤니티에 잘 어우러지는 외국인 친구들 많은 멋진 나'였는데, 한국 오니 '한국에 평생 살았는데도 친구도 별로 없고 한국인 95%가 다 짜증나는 나'로 급격히 떨어졌다. 그래도 머릿 속에 세계 지도를 떠올릴 때면, 힘이 난다.


고맙다. 제일 가까운 마카오에 당장 내일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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