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그렇게까지 기분 나쁜 건 줄 몰랐다. 공연 중 내가 '짝사랑 전문 가수다'라는 표현을 하면서 한참 옛날에 썼던 자작곡들을 소개하는데, 어떤 사람이 "야. 니가 소개팅 좀 시켜줘라."라며 크게 말하고, 공연 중에 도저히 집중이 안 될 정도로 크게 웃고 떠들고, 공연이 끝나고는 나를 아예 없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당시 테이블이 단 하나였고, 마치 회식처럼 30대 후반에서 40대 남자들만 대략 8명이 있었다.
가뜩이나 테이블도 하나인데, 경청해줬으면 어땠을까. 조용한 발라드를 부를 때는 당연히 노래하는 나보다 목소리를 작게 하는 게 예의이고, 그런 실례되는 말은 안 하는 것도 예의다. 공연이 끝났으면 수고하셨다고 말하는 거까진 욕심이었나.
그 당시에는 오늘도 즐겁게 공연 마쳤다며 뿌듯하게 걸어왔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열이 받았다. 마치 술 마시는 자리에, 조선 시대였다면 기생인 마냥, 광대 취급을 받은 기분이었다. 분명 관객들이 예의가 없었다. 신나는 노래도 아니고 그런 노래를 부르는데 깔깔깔 웃음소리가 나면 내가 중간에 멈췄어도 할 말이 없다.
이것이 ADHD인이 흔하게 겪는 '감정 인지 지연'이라고 한다. 순간에 너무 몰입되어 있어서 자기감정을 뒤로 미루는 것이다. 공연을 잘 마쳤다는 감정에 빠져서 기분 나빴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미 과자극 상태라, 감정을 즉시 처리할 여유가 없다고 하는데, 너무 맞는 말이다. 머릿속은 '오늘도 무사히 끝냈다. 영상은 잘 찍혔을까. 얼른 집 가서 유튜브 올리고 싶다.'에 가있었다.
과거에 그런 내 모습이 갑자기 뒷북치며 화내는 것으로 느껴진 사람들이, 황당해하며 사과를 안 해서 여러 번 문제가 있었다. 반면 상대가 곧바로 사과해서 풀린 기억도 난다. 아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 감정이 다쳤다면 그게 하루 전 일이든, 일주일 전 일이든 사과하는 게 맞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어도 내가 상처 받았으면 사과를 해야한다 이 한국인들아. 하루에 "sorry"를 50번씩 주고 받던 영국이 난 늘 그립다. 이건 특별히 고칠만한 약점이 아니다.
'다음부터는 그 자리에서 기분 나쁜 걸 인지해야지.'라고 수년 간, 다 생각하고 매번 괴로워해왔다. ADHD 진단을 받아 좋은 점은, '머리로는 아주 잘 알고 있는데 자꾸 의지대로 안 되는 게 내가 어떻게 의지로 할 수 있던 게 아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해준 것이다.
그러니 '왜 아까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은 안하는 게 건강에 좋다. '나에게는 감정 인지 지연 증상이 있고, 이건 ADHD인에게 되게 흔하고, 집에 가니까 화가 나는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라고 이제 알았으니 됐다.
영상을 편집하면서도 얼마나 열이 뻗쳤나 모른다. 관객 소리가 커서 도저히 영상으로 올릴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이 카메라는 심지어 그 테이블로부터 떨어져, 내 쪽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