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글쓰기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밥 먹다가도 브런치에 쓸 짧은 글이 떠올라서 메모장을 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길 가면서는 매우 흔하다. 머릿속에 항시 생각이 떠다니기 때문에, 나에게 글쓰기란 그냥 생각나는 말 빠른 속도로 타이핑하는 거에 불과하다. 굳이 '초고는 쓰레기다.'라는 생각할 필요 없이, 자동이다.
비 ADHD인은 하루라도 내 뇌와 바꿔 살아보면, 도대체 머리 터져서 어떻게 사냐고 할 거다. 그렇게 사는데 글쓰기 능력이라도 있어야지.
수많은 글쓰기 책을 보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그냥 쓰라고 한다. ADHD가 제일 잘하는 거다.
ADHD 약을 먹고, 글쓰기와 작곡이 어려워졌다는 사람들의 증언을 들은 적이 있다. 부작용 때문에 못 먹게 된 걸 감사해야 할 수도 있다.
ADHD 증상 피해자
세상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뉠 것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지만, 나에게 차단당한 피해자들 중에는 다시는 이름도 듣기 싫은 사람도 수십 명 될 거다.
ADHD 탓에 분노했을 때는, 내가 엄청 뭐라고 했다는 분위기만 기억날 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뭐 때문에 화났었는지 기억도 안 날 때도 있다. 뇌를 거친 게 아니다. 이건 마치 지하철에서 서서 설사하는 수준이다. 사람들 많은데 괄약근 안 조여져서 미칠 것 같은 거랑 진짜 비슷하게 푸아악 하고 풀려 버린다. 이게 제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비유 같다.
'일이 이렇게 되어서 유감입니다.'라는 말은 나올 수 있는데, 미안하다는 말은 안 나온다. 미안하다는 말은, 내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 때 나오는 말이다. 지하철에서 설사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끼친 건 아는데 진짜 미치겠고 내가 제일 환장할 일 아닌가. 내가 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이 흐릿해지고, 내 의지로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추측이지만, 스스로 감당하기 너무 힘든 상황이라서 뇌가 기억을 흐릿하게 만드는 거 같다. 생생하게 기억하면 괴로우니까.
'이러다 정말 업계 매장 당하고 이민 가야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의 사람과 대화할 일이 없으니 괜찮다.
도대체 공부를 어떻게 잘했을까
일주일에 세 번씩 다섯 시간 동안 대치동 수학 학원을 다니는데 못하기도 어렵겠다. 무엇보다 책 읽는 걸 매우 좋아했다. 그러니 국어와 영어는 자연히 잘했다. 다른 암기 과목은, 책을 사진 찍듯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외우는 능력이 있다. 이게 신이 공평한 것인가.
또, 벼락치기를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 한 달 전부터 중간, 기말 공부 계획표를 짜서 공부했다. 딴생각은 참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엉덩이가 무거워서 공부하는 시간 자체가 길었다.
ADHD와 중독
ADHD가 술, 담배, 카페인, 쇼핑 같은 중독에 빠지기 쉽다고 하나, 나는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 같다. 그런데 그것에 준하는 위험한 중독이 있었다. 사람 중독이다.
인터넷에서 모르는 사람 150명 정도 대화하면 한 명의 친한 친구를 사귈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한 서른 명은 나를 화나게 하고 90% 이상이 짜증 나게 한다.
이런 극악의 확률에도 놓지 못한 건, 그렇게 사막에서 바늘 찾듯 찾은 사람들이 너무너무너무 소중해서 정말 하늘이 주신 귀인처럼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서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인생이 바뀌었을 정도다. 영국인 친구는 첫 동아리 모임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말 걸었던 거고, 오빠는 영국에 사는 한국인 찾으려고 노력하던 그 작년 2월에 나를 반갑게 받아줬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술 중독인 사람도 자꾸 토해서 괴로우면 술을 잠시 안 마시겠지. 나도 '지금은' 그런 상태다. 차라리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게 더 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