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을 극혐했었다. 몇년 전, 약 부작용으로 살이 어마어마하게 쪘다. 그전까지는 사진 출사도 많이 다니고, 누가 봐도 말랐었다. 예나 지금이나 먹는 양도 쥐꼬리만하니, 정말 약 때문에 찐 것이 맞다. 그래서 극혐하던 내 자신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건 작년의 나에게 상당히 해로웠다. 반드시 병원을 일찍 갔어야 한다. 이 일을 겪은 이후로, '정신과 약 안 좋다던데.' '약 많이 먹으면 안 좋지 않냐.'이런 말 하는 사람들은 손절 대상 1번이 되었다. 폐암인데 집에서 기도하며 자가치료하겠단 말로 들린다. 본인은 그렇게 하시라.
우울증은 독감 같은 거다. 독감이 약한 정도라면 집에서 자가치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ADHD는 신경발달장애다. 분명 남들과는 다른, 도대체 상담을 십년 가까이 받아도 고쳐지지가 않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다. 명상? ADHD인은 명상하다가 갑자기 과거의 트라우마 생각만 하고 앉아있다. 걷기? 마찬가지다. 그동안 참 억울하고 힘들었다. 장애였다는데.
비 ADHD인은, 일상 생활에서 생각이 '떠오르는' 개념이라면, ADHD인은 눈 떠서 잘 때까지, 의식이 깨어있는 모든 순간 백그라운드에 돌아간다. 최근 몇 달 간은 불건강한 생각들이 먹구름처럼 늘 있었다. 마치 인터넷 창을 여러개 켜두는 것과 같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 밥을 먹든 글을 보든, 그런 마음 아픈 에피소드, 생각들과 멀티를 한 셈이다.
ADHD 약은 몸에서 다 거부했으니 다른 약을 주셨다. 하나는 트라우마를 잊게 해주는 약이라고 했다. 비현실적인 생각도 안 들게 해주고, 피해 망상도 없애주고, 그런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사는 걸 전기 차단기 내리는 것처럼 '차단' 시켜준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정확히 'ADHD 약'은 아니지만, 나한테 필요한 약을 주시는 방향으로 되었다.
그 약을 먹은지 며칠 좀 됐는데, 정말 신기하게 그런 소용돌이가 조금은 잠잠해진 거 같다. 굉장히 흥미롭게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분명 나처럼 ADHD 약이 안 듣는 사람도 어딘가 많이 존재할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ADHD는 좀 좋아졌냐?"라는 질문도 받은 적 있는데, 안타깝게도 ADHD는 약을 먹어도 평생 ADHD다. 하지만 덜 괴롭게 살 수 있을 거 같다.
활동에 ADHD 인식 개선 운동가도 추가해야 하나. 아무래도 올해 안에 책을 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