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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play, 영국

by 이가연

콜드플레이 콘서트 보러 간다 했더니 영국인 친구가 한물갔다고 했다. 다음 달에 보자.


하, 저 나라. 음식은 못 만들어도 음악은 죽인다. 괜히 내가 책에 '비틀스, 콜드플레이의 나라'라고 쓴 게 아니다.


'Viva La Vida' 들으면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영국 다시 갈까. 글로벌 탈렌트 비자받을까. 나 글로벌 탈렌트 장학금도 받았었는데, 비자 나오지 않을까. 다음 달에 6일 가지고 되겄냐. 비행기 미룰까. 영국 남자나 찾아서 계속 있었어야지, 왜 한국 왔나.'


영국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방 사람이 서울에서 동향 사람 만났을 때 이런 기분일까. 십 년 전, 폴 메카트니가 무대에서 유니언 잭과 태극기를 번갈아 휘날리던 장면도 생각났다. 어릴 때부터 해리포터 찐팬이었던 것도 그렇고, 비틀스를 좋아했던 것도, 폴 매카트니가 세운 음악 학교 학사 오디션을 봤었던 것도, 점쟁이가 나한텐 영국하고 일본만 맞다고 한 것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영국과 인연이 깊은 거 같다.



오랜만에 콘서트장을 찾았더니, 콘서트가 아니라 유산소 운동 같기도 했다. '또 일어나야 돼?' 싶었지만 막상 일어나면 즐거웠다. 전광판에 본인 얼굴 비치니까 막 흥분하고 울던 남성의 모습 보는 것도, 직접 여성 분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하여 'Everglow'를 옆에서 불러주던 무대도, 관객 참여형이라 재밌었다.


기술적으로는 'Yellow' 때 불빛이 전부 노랑으로 바뀐 것, 곡에 맞추어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바뀌는 것, 입구에서 나눠준 종이 안경을 쓰면 사방이 하트로 보이던 것도 신기했다. 또 한국에선 좀처럼 불꽃놀이 볼 일이 전혀 없었는데 간만에 보는 불꽃에 속이 시원해지기도 했다.


평소에 그렇게까지 좋아하던 노래가 아닌데, 콘서트장에서 듣고 나면 감동해서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면 예상했던 대로 역시 눈물이 고이는 'The Scientist', 'Fix You'도 좋았다. 2층에 앉았는데, 1층 스탠딩 존에 사람들이 둥글게 둥글게 손 잡고 도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즐거워졌다. 분위기가 몽글몽글하고 여운이 남는 공연이었다.



사실 엄청난 콜드플레이 팬도 아닌데, 그렇게 거금을 들여 갈 만할까 생각도 했었다. 게다가 집에서도 한참 먼 파주이니, 귀찮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지만 이거 지난주에 고민 한 5분하고 예매했다. 분명 영국의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데, 정작 영국에서 제대로 즐길 기회가 없었다. 그러니 이번 공연을 가는 게 왠지 당연한 거 같았다.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좋아할 게 확실했으니까.


콘서트를 보면 '나라면 이렇게 큰 공연장에 저렇게 전광판이 작게는 못 두니 전광판을 더 세웠을 거 같다. 외국인 가수들이 멘트 할 때마다 동시에 전광판에 자막을 타이핑해서 보여주면 좋겠다.'등 생각이 저절로 나곤 한다. 다음에 올 땐 한국말 잘해서 오겠다고 했는데, 아 그거 제가 해드릴게요..


남자 화장실을 임시 여자 화장실로 바꿔둔 건, 지금까지 콘서트 다니면서 처음 봤다. 사소하지만 그것도 다 콘서트 질이 된다. 콘서트나 뮤지컬 관람은, 여행 갈 정도의 돈,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참 좋은 선택지다. 이래서 고등학생 때부터 돈만 생기면 공연을 봤나 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영국에서 행복했다고 말하는 게, 한 달에 한 번은 런던에 갔는데 한 번 갈 때마다 얼마 썼나. 이번 콜드플레이 콘서트 티켓값 정도는 썼을 거다. 한국에선 돈을 안 쓰니까 도파민 파티가 안 났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딱 기다려.


행복했다.

I believe in my music.

I'll speak to you through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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