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영국 도착

by 이가연

프라하 공항에서 이제 영국 가는 비행기를 탈 생각에 울컥했다. 또 이런다니. 심장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다.

작년 8월은 걔가 있으니 간 거고, 12월은 걔가 졸업식에 올 수도 있다는 마음에 간 거니 울컥한 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울컥한 건, 영국 자체를 향한 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도 뜨겁게 불탔던 곳이라서' 같다. 한국에서는 앨범 발매와 책 출간을 제외하고는 썩은 동태처럼 살았는데, 영국에선 1분 1초가 불타는 고구마였다. 한국은 억지로 노력하고 일을 만들어야 생겼지만, 영국은 학생 신분이라 주변에 이벤트들이 많고 절로 도파민 파티가 났다.

사랑, 나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내 꿈에 대한 사랑, 학교에 대한 사랑, 친구에 대한 사랑, 그 모든 곳이 넘쳤던 곳이다.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금 불타는 마음을 껴안고 런던 개트윅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곤 곧바로 호텔 예약한 이스트본으로 향했다. 기차역에 도착해 호텔로 향하는데, 캐리어를 끄는데도 뛰어다니고 싶었다. 익숙한 영국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ADHD력 폭발해서 아이처럼 날뛰고 싶었다.



내 브런치를 읽을 리 없으니 편히 쓰겠다. 나의 영국 여행기에 이걸 안 쓰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감정의 본거지에 왔는걸.

오빠가 몇 달 동안 걔의 카톡 프사와 배경 사진을 맨날 확인해 줬다. 내가 맨날 봐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해 봐줬다. 그래서 이젠 오빠도 너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영국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그 카톡 배경 사진의 장소였다. 호텔에 짐만 두고 바로 버스 타고 왔다. 여기가 맞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비슷하게 생긴 절벽이 여러 군데로 알고 있는데.


똑같은 장소가 맞다는 걸 확인하자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어차피 다 똑같이 생긴 건 맞는데, 작년에 여기 살 때 혼자 갔던 곳은 같은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한국에 걔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가 없다고 창원을 2번 내려간 나였기에 이 절벽 위에서 묘한 편안함을 느끼는 게 이해가 됐다.


마음은 따뜻해졌을지 몰라도 날씨는 매우 추웠다. 친구 말로는 지난주까지 정말 여름처럼 더웠는데 갑자기 이번 주에 추워졌다고 한다. 가뜩이나 바닷가라 바람도 많이 불었다. 바람이 불 때면 눈에 모래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걔는 여길 어떻게 온 거지. 나처럼 이스트본에 1박 잡았던 걸까. 구글맵을 찾아보니 사우스햄튼에서 여길 오려면 이스트본에 들려서 나처럼 버스 타는 루트가 맞았다. 다만 이스트본은 영국인 친구도 오늘 나 때문에 처음 와봤다고 할 정도로 아주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보통 세븐 시스터즈는 브라이튼 하고 세트로 여행 오는 게 흔하고 나도 지난번엔 그랬다. 걔도 그랬겠지.


고만고만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진 속 집들 보고 이번에는 여기가 맞다는 걸 알았다. 그런 디테일까지 보고 앉아있으니 진짜 걔가 연예인인가 싶었다. 보통 덕질할 때 팬들이 이렇게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 한 장 가지고 저기가 어디인지 유추하고 어떻게 갔을지도 생각한다. 덕질할 때도 안 해본 짓, 이번이 사실 두 번째다. 작년 8월에도 프로필 사진에 있는 장소 찾아서 가는 거 이미 해봤다. 그때 일주일 동안 갔던 곳 중 그 라벤더팜이 제일 기억에 남아있다.


오후 4시 버스를 탔는데, 막차가 6시라 조금 시간이 빠듯했다. 절벽이 사실 경치 감상 말고 할 거는 없어서 1시간 정도 머물다가 버스에 올랐다.


시내 투어 버스는 한 번 결제하면 언제든지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다. 나는 그 절벽에서 한 번만 내렸다. 그래도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매우 아름다워서 좋았다. 이스트본 시내 전경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고, 중간중간 양 떼도 등장했다. 양 떼는 기차만 많이 타고 다녀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는데, 근처에 산이 없는 것도 여전히 낯설다. 한국은 국토 70%가 산이라는데, 영국은 가도 가도 풀밭뿐이다.


다시 만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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