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여행 와서 오아시스의 'Whatever' 노래를 엄청 들었다. 이번엔 이 곡인가. 듣자마자 특정 사람 또는 시기가 확 떠오르는 곡들이 있다. 그런 걸 '아. 묻었네.' 하며 종종 생각하곤 한다. 심하면 듣기 힘들어 한다.
런던은 매번 비슷한 길을 걷는다. 워털루역에서 내려서 다리 하나 건너면 내가 좋아하는 웨스트 엔드, 소호 구역이 나온다. 다리 건너면서 런던아이도 볼 수 있다. 날씨 좋은 날에 건너면 기분 좋게 런던 당일치기를 시작할 수 있다.
늘 가던대로 점성학 상점, 초콜릿 가게, 워터스톤즈 두 군데 들렸다. 워터스톤즈가 사우스햄튼 포함 다른 도시에도 다 있지만, 런던 다른 지점 중에서도 거기가 제일 좋다. 일단 엄청 크다. 사우스햄튼은 쪼만해서 매번 들리긴 하는데, 막상 살 책은 없었다. 여기는 내가 관심 있을 만한 책도 많고,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소파도 있다. 보통 음악, 심리학, 옆에 영적인 거 (타로, 점성학, 수비학, Witchcraft 등), 여행 코너를 돌아본다.
그렇게 걷다가 의외의 기쁨을 발견하기도 한다. 오늘은 서점 가는 길에 토트넘 코트 로드 역 앞에서 화려한 디지털 아트 전시를 봤다. 분명 자주 지나치던 곳인데, 처음 봤다. 남극의 펭귄들, 흩날리는 꽃잎, 지구와 달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스크린X 영화관처럼 펼쳐졌다.
레고 상점도 들렸다. 주말이라 그런지 심지어 줄 서서 들어갔다. 레고로 된 큰 빅벤도 있었다. 해리포터 미나리마 상점도 가고 엽서 가게들도 들렸다.
서점에서 화장실 가려는데 영수증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영국이다.
분명 데이터 켜놨고 왓츠앱 알림 안 떠서 메시지 안 온 줄 알았는데, 데이터 안 터져서 안 온 거였다. 역시 영국이다. 토요일이라 길거리에 사람 많아서 카톡 전송도 아예 안 되거나 10초씩 걸렸다.
그렇지. 이때쯤 되면 이런 게 더더 보인다. 곳곳에서 담배 냄새도 엄청났다. 바람 불 때는 가디건 입어도 서늘한데도, 지하철 타면 엄청 더웠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지하철 타면서 매번 감사할 수도 없고. 오빠는 영국에서 자라서 서울이 천국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한국의 편리함에 모든 순간 감탄하긴 어렵다. 병원 갈 때도 감탄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도 영국은 어쩌구 하고, 이 정도면 많이 감탄하는 편이다.
학교 동기이자 현재 런던에서 석사 한 번 더 하고 있는 친구 만나서 펍에 갔다. 미리 내가 알아본 뮤지컬 펍으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매우 시끄러운 분위기가 반겨줬지만, 거긴 시끄러울 걸 예상하고 갔다.
라이브 밴드가 손님들 신청에 따라서 곡을 연주해 줬다. 건반이자 보컬인 여자 뮤지션을 보며, 저분은 얼마나 레퍼토리가 많으면 저렇게 바로바로 연주할 수 있을까 싶었다. 특히 하이스쿨뮤지컬 노래 나왔을 때 반가웠다. 여자들이 엄청 과격하게 춤 춰서 '오오미...'싶기도 했다. 그 노래 가사에 'Wild cats'가 나오는 터라, 친구에게 저 사람들이 지금 'Wild cats' 같다고 했다. 한국은 저렇게 춤 추는 건 클럽에나 가야 가능한 일 아닌가.
어떤 아주머니가 나랑 친구랑 영상 찍어준다고 해서 아주 뻘쭘해하며 핸드폰을 맡겼다. 역시 춤은... 부끄럽다. 사람들이 왜 노래 시키면 부끄러울지 알겠다. 카메라 맡기고 문득 든 생각이, '이 아주머니 혹시 우리를 레즈 커플로 알고 찍어준다고 했나' 였다.
친구 전 여자친구도 긴 머리에 여자여자한 스타일이었어서 제법 나랑 비슷하다. 이 친구는 피어싱도 타투도 많고 머리도 짧다.
친구랑 친구 전 여자친구랑 나랑 셋이서 사우스햄튼에서 놀곤 했다. 그 전 여자친구는 얼마 전에 여의도 우리 집에 놀러왔던 애다. 그 둘이 여전히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덕분에 둘 중 누구와도 어색해질 일은 없었다.
이 친구가 런던에서 석사를 한 번 더 하는 바람에 헤어졌는데, 그새 새로운 여자친구도 있다. 근데 이젠 자기가 중국으로 돌아가야하니, 9월엔 또 헤어질 거 같다고 하길래 아주 웃음이 났다. 연애가 아니라 무슨 취미 생활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