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막 화내거나 충동적인 행동 하려고 버튼 눌린 거 같으면 좀 조련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대부분 상대가 어쩔 줄 모른다. 아무리 본인이 잘못해서 미안할 일이라 해도 "괜찮아. 진정해. 해결할 수 있어. 숨 쉬어." 해주면 참 좋겠는데, 그런 사람은 본 적 없다. 내가 혼자 하기가 너무 힘들다. "내 눈을 봐. 할 수 있어."라고 할 수 있는 겁나 쎈 사람이 필요하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심호흡하는 거만 도와줘도 상황이 매우 달라진다. 근데 그 스스로 심호흡할 생각 자체가 안 날 뿐이다. 감정 변화가 강렬하면서도 빠르다. 그래서 내가 잠깐 화냈다고 해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이미 다 까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배는 섬에 잘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가 매우 맑고 좋았다. 배 기다리면서 무슨 벌써 인천-런던 비행기 가격 봤다. 보아하니 7,8월은 가격이 미쳤고 9월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아마 지금 아쉬워서 그렇지, 10월에만 끊어도 행복해할 거다.
네가 구한 직장에서 하는 일이 civil engineer였구나. 너 전공 생물학이잖아. 일하는 게 도시에 무슨 파이프 어쩌고라고는 알고 있었다. 사우스햄튼 도시 같이 걸어 다니면서도 여기 건물 얼마 전에 파이프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그랬다고 했다.
...
그게 도시 공학이네.
그러니까 지금 남자친구를 2년 차단했었고... 그랬구나. 유니버스 진짜 나랑 장난치냐. 나중에 걔를 만나게 된다면 너도 건물마다 파이프가 똑바로 굴러가는 게 뭔 말인지 아니 물어봐야지.
원래는 친구가 하는 일 얘기해줘도 어차피 과학 쪽이라 못 알아들을 거 같아서 '그렇구나'했는데 갑자기 '빨리 더 자세히 얘기해봐.'가 됐다.
이 친구랑도 보통 인연으로 맺어진 게 아닌 거 같다. 가족도 걔도 그렇고 분명 전생에 공대랑 뭐가 있다.
친구가 결혼하면 당연히 내가 신부 들러리라고 했다. 영국 결혼식,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한국에서 27살 되도록 한 번도 청첩장 받을 일이 없어서 그동안 은근 속상해했다. 마지막으로 엄마 따라가본 게 2016년이다. 생각해 보니 별로 친하지도 않거나 적당히 친한 사람들 결혼식 다니며 돈 쓰는 거보다, 딱 한 번 영국에 신부 들러리하러 가는 게 훨씬 좋아 보인다.
배에서 내려선 바로 택시 타고 '가드스힐'로 이동했다. 버스가 다니긴 해도, 훨씬 오래 걸리고 길거리에 잘 다니지도 않는다. 택시 타고 25분 정도 이동해서 영국 버전의 소인국 테마파크에 도착했다. 걸어가면서 한국 제주도에도 이런 곳이 있는데, 거긴 이런 영국 마을 분위기가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명소를 해놨다고 얘기해 줬다. 규모는 정말 작았다. 구경하는데 한 30분 걸렸지만, 간 보람은 있었다.
특히 아래 사진과 같이 모델 빌리지 안에 모델 빌리지가 있는 게 재밌었다.
기념품샵에서는 연필이랑 초콜릿, 그리고 돌 하나를 샀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는 돌인데 이거 어제 런던 점성학 샵에서도 살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가 안 샀었다. 방에다 두면 가족들이 '무슨 돌이 있냐...' 싶어 할 거 같다. 돌을 돈 주고 사다니. 나도 처음이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도 이거 두 개 있다고 하길래 샀다.
그리곤 모델 빌리지에서 나와서 점심을 해결하러 근처 야외 카페로 갔다. 친구는 점심으론 스콘 하나, 저녁으론 샌드위치 하나를 먹었다. 얘가 왜 말랐는지 먹는 거 보면 늘 납득이 된다. 물론 나도 오늘은 점심으로 오믈렛 하나, 저녁은 오렌지 주스, 딸기 주스 먹었다.
한국은 아무리 야외라 해도, 옆에서 바로 밥 먹고 있는데 담배 피우진 않는다. 상식적으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이는 다른 데로 가서 핀다. 이런 걸 잘 기억해 둬야 된다. 분명 내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다음은 'The Needles'로 이동했다. 택시비 78 파운드 나왔다. 창원 생각났다. 그때도 택시비 깨졌는데 도착하니 자연은 아름다웠다. 오늘에 비하면 그 정도 택시비는 별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