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마지막 날에 드디어 모든 음원 파일이 완성됐다. 사람이 평생 동안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생각할 수 있는 심장의 수명이 한 70년이라고 하면 나 한 7년 쓴 거 같다. 26년 동안 써본 적 없었으니 괜찮다.
개트윅 공항으로 가기 전에 도시 두 군데를 들리기로 했다. 먼저 치체스터에 내렸다. 친구도 뭔가 역사적인 마을이라고 가봤다고 했다. 날씨가 영국 도착한 이래 처음으로 꾸리꾸리했다.
치체스터 도착하니 분위기가 뭔가 윈체스터 같았다. 이름이 비슷한 데엔 이유가 있나. 둘 다 똑같이 치체스터 대성당, 윈체스터 대성당이 유명하다. 그리고 도시라기보다 작은 마을이다. 이 두 군데에 비교하면 사우스햄튼은 큰 도시다. 어디가서 시골이라고 놀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내가 서울 사람이라서 그렇다.
추가로 얻은 영국에서의 기적 같은 반나절에 감격하면서 아침 먹으러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스는 아예 안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5월에 아이스 음료는 안 되고 뜨거운 거만 되면 카페 장사 못한다.
이 곳 저 곳 정해진 데 없이 마을을 구경하며 기념품 상점에 들어갔다. 동화책 3권 사면 할인하길래 샀다. 한국에는 절대 없는 LGBTQ+ 동화책이다.
기독교 서점도 들어갔다. 해외에는 이런 식으로 전문 서점이 있는 게 참 좋다. 기독교도 매우 안 좋아하면서, 서점 분위기가 평화롭고 예뻐서 들어가서는 비누 2개를 샀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한 호기심은 있다. 그건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지적 호기심이다. 워터스톤즈도 있으면 당연하게 들리는데, 이번에는 처음 보는 해리포터 게임 굿즈가 있어서 그거랑 상식 퀴즈북 샀다.
아룬델에도 도착했다. 2시간 치체스터까지는 어떻게 해봤는데, 이 쯤 되니 캐리어 끌고 다니는 게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캐리어 보관할 수 있는 락커 찾는 사이트에도 'unavailable'이 뜬지라 방법이 없었다.
혼자 땀 뻘뻘 흘리며 캐리어 끌고 다니는 어린 여자 (me)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안 도와주려하는 사람은 못 봤다. 어떤 가게에 들려서 구경하던 중, 나이 든 여자 분이 친절하시길래 하나 구매하면서 혹시 캐리어 여기 좀 놔도 되냐고 물었다. 그림을 되게 예쁘게 잘 그려서 파시는 분이셨는데, 역시 예술가셔서 그러신가 마음도 예쁘셨다. 이제 문제 해결 됐으니 자유롭게 다니라고 해주셨다.
캐리어 놓자마자 이걸 끌고 다녔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거기서부터는 오르막길 또는 숲길이었다. 여긴 자연을 감상하라고 있는 마을이다. 아마 오르막은 쳐다도 못 보고, 숲길 계속 걸어가기도 포기하고 가만 앉아있었을 거다. 한참 손해볼 뻔했다.
20분 정도 숲길을 걸어서 스완본호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오리는 물론 젖소도 봤다. 영국에서 말이나 당나귀는 흔히 봐도, 젖소는 처음이었다.
아룬델은 다음에 다시 와도 되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개트윅 공항에서 한 번에 올 수 있으니 딱이다. 명소인 아룬델 캐슬도 오늘 월요일이라고 문 닫았다.
역시 영국이다. 점심까지만해도 날도 흐리고 비도 잠깐 왔었는데, 3시쯤 되니 어제처럼 맑아졌다. 영국에서 매일이 맑았던 셈이다.
파리 공항은 밤 10시 반에 도착한다. 호텔 들어가면 거의 12시다. 그래서 미리 공항에서 호텔까지 길이 무섭진 않은지 확인하고 저녁 비행기로 끊었다. 도보 거리가 길지는 않은데, 부디 무사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