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아웃하고 나오니 바람이 엄청 불었다. 나 원피스인데. 스타킹도 안 신었는데. 이거 빤스 바람인데.
오디션장은 기본적으로 잘 보이기 위해서 발악을 하라고 만들어진 곳이긴 하다. 내가 그걸 못 한다. 뭔가 여수를 겨냥해서든, 본인이 이런 식으로 잘할 수 있다고든 기회를 달라고 샤바샤바 멘트 하는 게 들렸다. 그런 입 발린 말, 어필하는 말을 약간이라도 들으면 속이 안 좋다. 나는 그냥 나고, 내가 마음에 들면 쓰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예전에 장나라 님이 방송 나오셨을 때, 어떤 분이 "이 언니는 눈동자가 어리다"는 말을 하셨다. 내가 그런 걸 딱 느꼈다.
오디션장에 도착해서 '여긴 어디징!? 이건 뭐징? 우왕!! 신기하!!!댱!!!' 하는 눈빛이다. 조용한 ADHD이기 때문에 방방 뛰고 싸돌아다니진 않지만, 눈빛과 속마음이 ADHD다. 진단받은 이후, 사람들 사이에 섞일 일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 진짜 ADHD 맞다. 그리고 성인 여자 ADHD는 안 그런 척하려고 마스킹 능력이 탁월하다. 그것도 맞다.
여수고 부산이고 방송국인데 당연히 신기하지. 7살은 속으로든 밖으로든 방방 뛰어도 된다. 성인 ADHD는 성인이라 이질감이 든다. 그래서 그동안 분출하던 방법이, 낯선 사람 보면 다 말 거는 것이었다... 근데 오늘은 다행히 상처 안 받았다. 이래서 노는 풀이 중요하다. 똑같이 다 오디션 보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벽을 치고 경계할 가능성이 확 낮아진다.
1층에서 최소 12년은 지나보이는 라디오 스타 간판을 보았다. 규현이 있어서 사진 찍었다. 나는 2014년부터 규현 팬이다. 얼굴 보니 내가 팬 되기도 전 같다.
1시부터 접수받는다고 했는데, 그건 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와있었기 때문이다. 12시 반부터 접수받고, 시작은 1시부터 하는 게 더 공평했을 거 같다. 지키는 사람도 없이 오디션이 진행되는 공개홀도 다 열려있어서 '내가 역시 한국이긴 하구나'싶었다.
심사위원 분이 상당히 친절하셨다. 사실 그런 경연장과 심사위원 분위기 만나기 어렵다. 굉장히 귀한 자리였다. 떨지 말라고 한 마디씩 해주시는 것도 좋았고, 노래 끝나고 한 마디씩 붙여주시는 것도 귀했다. 어떤 분들은 정말 도움이 될만한 피드백을 주시는 걸 보면서, '참가자들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보여주는 걸 참 귀하게 여기시는구나' 느꼈다.
보통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참가자 중에는 탈락자가 더 많을 것이다. 합격은 못 시켜줘도 '의미 있는 경험했다. 즐거웠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면 주최 측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다.
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엿이나 먹어라!!'하는 참가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노래하는 중간에 끊는 것도 참가자들도 다 분위기 보고 이해한다. 예전에 오디션 볼 때는 노래 끊을 때 짜증난다는 얼굴로 넥슬라이스를 아주 연거푸하신 분도 계셨다. 중간에 끊는다고 상처 받는 게 아니다. 오늘 심사위원 분 중에 진행해주신 분은 앞으로 더 잘되실 거다.
원래 입시고 오디션이고, 평가 받는 자리에서 1곡만 불러야 한다면 무조건 인어공주를 불렀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래도 4일 전에 앨범이 나왔고, 타이틀곡을 부르고 싶었다. 대기하면서 '아... 지금이라도 엠알 바꿀까.' 싶긴 했다. 분위기를 봤을 때, 1절만 부르고 끊길 거 같았는데 정확히 그랬다.
노래가 끝나고 영어가 더 편하냐고 물으시길래, '아. 또 한국말로 노래 불렀는데 영어처럼 들렸나' 싶었다. 요즘 무의식 중에 혼잣말도 영어로 하는 마당에 충분히 발음이 영어처럼 들렸을 수 있다. 다만 내가 그렇다고 모국어가 영어인 것도 아니고, 한국어가 더 편하기 때문에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좀 어리둥절했다.
다행히도 영어로도 하나 불러보라고 하셔서, 바로 무반주로 인어공주를 불렀다. 이건 나의 입시곡이라서 언제 어디서나 툭 건드려도 부른다. 끝나고 내려오면서 영어로도 꼭 들어보고싶었다고 하셔서 '아 진짜 스윗한 심사위원이시다.' 싶었다.
확실히 나는, 뭔가 만들어진, 사회성으로 다져진, 노련한 사람들에 지친 누군가가, 뭔가 오아시스처럼 발견해야 한다. 완전 '한국' 한국인이면 날 좋아할 수가 없다. 백인이고 흑인이고 게이고 장애인이고 다양한 사람과 얘기해 보고 다양한 언어, 문화권과 접해본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매력을 보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3분 내로 판단되는 오디션과는 잘 안 맞는다. 프랑스어로도 노래 부르고, 일본말 중국말도 다 잘하고, 뮤지컬도 잘하는 등 까도 까도 나오는 게 나의 매력인데 3분 내로는 '영어 잘할 것이다. 자작곡을 발매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수준의 정보 밖에 줄 수가 없다.
노래도, 부르기 시작한 지 1분은 지나야 된다. 끊길 무렵엔 이제 막 내 목소리가 좀 들리네 싶었다. 긴장의 문제라기보다, 이것도 ADHD다. 노래, 무대에 딱 집중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솔직히 그러고도 집중력이 on off on off 계속 스위치가 바뀐다. 이렇게 내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니, 치료든 훈련이든 필요한데 부작용으로 약을 찾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 서울로 올라가는 ktx 안이다. 덕분에 여수 구경 잘하고 간다. 특히 어제 크루즈 타고 불꽃놀이 구경하고 걸어오면서 '마산 밤바다'쓴 게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