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ADHD인을 도울 수 있는 방법

신경 다양성 이해하기

by 이가연

영국에서 하는 신경 다양성에 대한 웨비나를 들었다. 호스트와 강연자들을 포함, 대다수가 영국인으로 보였다.


오빠는 영국에서 일하면서 일 년에 두 번은 신경 다양성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한다. 나를 이해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성격과 성향이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달라서가 아니다. 제이드도 영국인이니 마찬가지다. 영국에서 평생 살면서 교육받은 것이 작용하는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한국인들은 이렇게 하나 같이 날 힘들게 하고, 영국에서 평생 산 사람들은 이렇게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나. 영국엔 '인종차별이란 무엇인가', '할아버지와 LGBT 파티'와 같은 각종 그림책이 있을 정도로 아주 어려서부터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다른 게 자연스러운 걸 배운다. 한국은 '우리는 하나다'를 배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뉴로티피컬(일반인)이 뉴로다이버전트(자폐, ADHD 같은 신경 다양인)와 같이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두 명의 친구들을 보면 간단하다. 나의 장점을 알아준다. 내가 강점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아서, 약점이 별로 잘 안 보인다고 한다. 예를 들면, 때때로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을 보이는 건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독창적인 거다.


가장 중요한 건, 의사소통이 확실하다. 오빠가 베트남에 간 두 달 동안 이례적으로 2-3일씩 연락이 되지 않아도, 어차피 돌아오면 따뜻한 메시지가 왕창 올 거란 믿음이 있었다. 제이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은, 매번 며칠씩 연락이 되지 않는 예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오빠 같이 매일 4시간 자고 일하는 사람도 이렇게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보면서, 이게 얼마나 충분히 가능한 일인지 알았다. 말을 해야 안다. 그동안 과거 한국인들에게 받은 상처가 상당히 트라우마처럼 자리 잡아서, 몇 번이고 얘기해 줘야 생기는 믿음이다. 한국인은 차라리 나를 자폐인이라고 생각하고 대해줬으면 좋겠을 정도다. ADHD에 대해선 몰라도, 자폐면 확실히 잘 알아듣게 말해줘야 된다는 걸 알테니까. 가장 분노했던 건, 한국인은 상습적으로 안읽씹과 읽씹을 하며 말을 해주지를 않아서, 폭발하기 전에 조용히 연락처를 삭제하게 됐다. 일반인도 화날 일인데, 나는 백 배로 느끼니 오죽하겠나. 사실 '말을 안 하면 모른다'는, 꼭 자폐, ADHD인과 같은 신경 다양인을 상대할 때가 아니라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상식 아닌가...


마지막은 감각이 예민하다는 걸 알아준다. 영국에서도 시끄러운 펍은 못 갔다. 그리고 내가 감정을 남들보다 매우 깊게 느끼는 걸 잘 안다. 오히려 내가 진짜 표현을 잘한다고 칭찬해 준다. 감정이 이랬다 저랬다 이랬다 저랬다 널 뛰어도 '왜 이래?'싶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때론 흥미롭게 바라봐준다.


웨비나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길, 자기 매니저는 자신이 뉴로다이버전트란 걸 알자마자 이해하려는 트레이닝 코스를 시작하고 지지해 주게 됐다고 한다. 웨비나를 주최한 기관 홈페이지를 찾아봐도, 부모를 위한 조언뿐만 아니라 고용주를 위한 조언도 있었다. 대충 보다가 어차피 한국에서 나쁜 경험들 떠오르면서 열만 받을 거 같아서 안 읽었다. (인터뷰 전에는 인터뷰가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알려줘라. 일과 관련되지 않은 얘기를 일절 하지 말아라 등이 있었다. 개뿔. 한국은 내가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이 고용주가 이런 감수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느라 바빠서, 내가 평가받는다는 생각도 덜 들었었다.)


법적으로 장애인을 채용해야 하는 기업도 그냥 부담금 내고 만다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ADHD는 한국에서 장애 인정도 못 받는다. ADHD가 의심이 되더라도, 돈이 많이 들까 봐 또는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아직 남아있어서 한국은 미진단자들이 영국보다 많을 것이다. 영국은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 이런 신경다양인에 대한 인식이 높고, 병원도 공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뉴로다이버전트들은 신체, 정신 건강 문제가 같이 딸려올 가능성이 높다. ADHD인이 자살할 확률이 비 ADHD인보다 30% 높다고 한다. 자기혐오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상담에서 정말 자주 다룬 주제가 '자기혐오'였는데, ADHD 진단만으로도, 그 자기혐오가 확 내려갔다. 이제야 드디어 다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미진단 ADHD'로 살았던 시절이 많이 억울하고 슬퍼서,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걸 생각하면 안타깝다.




ADHD는 기본적으로 학교 마치기도 힘들고, 다른 아이들은 그 나이 때 당연히 자연스레 하게 되는 일도 하나하나 도전 과제가 된다. 사람들 코멘트들을 읽다 보니, '내가 영국에서 석사까지 한 것만으로 미친 (positive) 거다..'라고 다시금 느꼈다. 진짜 조금만 일찍 진단받았더라면, 학교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힘들 때마다 웰빙팀 찾아가서 상담받은 거 생각하면 박수가 나온다. 제이드도 내가 말하기 전까지 학교를 3년 째 다니면서도 그걸 이용할 생각을 못했다고 했다.


이번 웨비나를 듣고 누군가가, 언젠가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그럼 네가 ADHD가 있다는 걸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하는 질문에,

1. 장점으로 알아주기 (같은 행동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2. 의사소통 확실히 하기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하며 말을 안 하면 절대 눈치로 파악할 수 없다)

3. 감각 예민함, 감정의 다름 알아주기 (같은 상황에서도 일반인보다 백 배로 느낀다고 한다)


라고 대답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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