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면, 대부분 '기능 저하'에 초점이 맞춰져서 기분이 안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ADHD가 아니었다면 과연 6개 국어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냥 영어 하나 잘하는 거에 만족하고 살지 않았을까.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ADHD는 호기심이 많고, 관심 있는 것에 엄청나게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난 그게 음악하고 외국어였다. 일본어는 사연이 있지만(아래 링크), 중국어부터는 그냥 언어 수집하듯이 쭉쭉했다. 남들은 '중국어 공부를 할 거야! 마음먹었어!'라고 시작한다면, 나는 진입 장벽이 없었다. 당연하게 일본어 > 중국어 > 스페인어 > 불어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일단 하고 보는 충동성이 있으면, 그렇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도 가만히 못 앉아있고 산만한 ADHD가 있는 반면, 나는 머릿속이 산만하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떠도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이 언어 했다가 저 언어 했다가 계속 바꾸는 것이 오히려 뇌가 즐겁다. 비 ADHD인들은 그게 피곤하거나 어려울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생각 저 생각, 이 행동 저 행동 수도 없이 바꾸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하루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많이 쓸수록 활기차다. 저번에 오사카 갔을 때도 오늘 하루에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다 썼다며 엄청 신나 했다.
ADHD는 남들보다 더 많은 자극을 필요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뇌가 못 견딘다. 흔히 ADHD는 중독에 취약해서, 카페인, 알코올, 담배, 게임과 같은 건강에 좋지 않은 중독이 하나씩은 있기 쉬운데, 난 그러지 않다. 그렇다고 소방관, 경찰관, 의사처럼 직업적으로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그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다양한 언어로 다른 자아를 경험하게 만들었고, 건강한 방식으로 도파민 시스템이 유지되게 했다.
특히 나는 읽기, 쓰기 능력이 우수한 것이 아니라, '말하기' 능력만 갖고 있다. 영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교육 덕에, 그 4개 영역이 고루 발달했다. 하지만 나의 의지로 공부한 일본어부터는 말만 잘한다. 이는 내가 '충동성' ADHD인 것과 연결된다. 말하다가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남들보다 적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영어를 알려주게 되면 '그렇게 머리 굴려서 어느 세월에 말할래'하는 답답함이 들 수 있다. 나는 잘 몰라도 일단 하고 싶은 대로 뱉고 보기 때문이다. (이래서 ADHD를 그냥 아기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아기들이 말 배울 때 생각해 보면 된다. 말하면서 아기들이 틀릴까 봐 고민하는가.)
그리고 일부 ADHD인은 청각이 유난히 민감해, 언어 습득이 빠르다고 한다. 내가 음악을 하고 있고, 방에 항상 들리는 소음 때문에 내 방에는 잘 때만 들어갈 수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오감 중에서도 청각이 예민하다.
자아 성찰 지능이 높고, 나에 대해서 참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올해 1월 ADHD를 진단받은 이후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나중에는 아마 ADHD에 대한 스피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준전문가가 되어있을 거 같다. 이젠 '항상 뭔가 남들과는 달랐던' 행동과 장단점이 '뇌의 특성'으로 쉽게 이해가 된다.
주변에 나 같은 사람이 없었고, 평생 '나는 왜 이럴까'하며 살아왔다. 단점을 보며 '뇌가 남들하고 달라서 그랬던 것이니 나도 나 스스로를 이해하자'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진 장점들을 보며 '내가 이래서 남들과 다르게 우수했군'하는 것도 필요하다.
난 여전히 ADHD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