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이렇게 12, 5, 9월 영국에 갈 정도면, 영국인하고 장거리 연애해도 됐겠다.'라는 생각이 스친 순간 깨달았다. 영국인 애인이 있었으면 애초에 한국에 오질 않았겠지. 영국인 애인 안 만들고 뭐 한 거냐. 나는 무조건 거기 남았어야 행복했다. 한국 와서는 한국인 싫다고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한국인을 너무 좋아했다.
너무 사랑했다. 한국인한테 왜 그렇게 치를 떠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었는데, 잘 안 받아주는 거는 마치 책상 모서리에 발을 부딪히는 것과 같다. 그거 가지고 "나 다쳤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자꾸 질문을 해서 짜증 나게 하든, 전형적인 한국인스러운 말을 해서 짜증 나게 하든, 그게 상처로 남지는 않는다.
내가 진심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은, 원래 알던 한국인 친구들의 채팅방 나가기를 누르고, 삭제를 해야 할 때다. '이 사람들이 내가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운 건데, 걔처럼 말을 안 하는 거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버렸다. 나는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공감만 누르고 튀고, 만날 약속도 안 잡히고, 답장 속도도 느려진 것이 보인다. 이젠 이런 걸 예민하게 감지하게 되어서 고마워해야 할 일인가. 근데 난 여전히 그들이 나를 밀어낸다고는 도저히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단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상처가 쌓이고 쌓이기 전에, 삭제를 해야 한다. 아프다.
나는 사과를 받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건 정황상 이해가 된다 해도, 본인이 밀어내려고 갖은 티를 다 냈는데 내가 눈치도 못 챈 거 아니냐는 말은, "그게 안 되니까 ADHD고 장애인 거야 이 새끼야!!!"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가슴에 남는 상처 수준이 아니라 다리를 절단 내놓은 기분이다. 그냥 상처가 1년 반을 갈 리가 없다. ADHD 진단을 받은 뒤로, 참 많은 글을 썼다. 진작 알았으면 그 정도까진 가지 않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짙게 있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일반적으로 목발 짚고 있는 사람의 발을 걷어차진 않지 않는가.
'내가 사과를 바라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편안해질 거 같다. 동시에, 사과를 받지 않더라도 그의 마음 한 켠에 미안함이 깔려있을 거라고 한 치의 의심 없이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