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가연 Nov 12. 2023

정말 음악을 해야 할 사람이구나

'나는 정말 음악을 해야 할 사람이구나'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자주 있기에, 지금까지 음악하고 있다. 그런 순간은 이번 달 저작권료를 많이 받았다거나 유튜브 조회수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다. 물론 조회수가 높게 나오면 기분이 좋다.


마음이 일렁이는 순간은 그 어떤 말로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 자작곡이나 애정이 가는 노래를 연주할 때면 그 노래를 타고 넓은 바다를 마음껏 항해하는 것만 같다. 5살 때로 돌아간 것 마냥, 좋아서 방방 뛰고 싶을 때도 있다.


음악 는 내 모습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이다. 싫어하고 감추고 싶은 내 안의 모습이 전부 잊힐 만큼 뿌듯하고 사랑스럽다. 물론 외국어를 잘하는 내 모습도 멋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합쳐서 지금 영국에 와있고 앞으로도 그 두 모습을 같이 해나갈 거다.


자작곡 얘기할 때, 내가 부른 노래 영상에 대해 얘기할 때, 어떻게 해야 더 지금보다 음악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얘기할 때, 누군가가 부른 노래를 디테일하게 듣고 감상을 얘기할 때, 앞으로 있을 음원 발매나 공연에 대해 얘기할 때 등 퍼포머로서 내가 얘기할 때 행복하다. 그렇기에 지금 뮤직 퍼포먼스 전공을 하고 있는 것일 거다. 음악 교육 전공도, 국제 음악 매니지먼트 전공도 전부 매력적이지만 '퍼포먼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설레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퍼포머로서 내가 이야기하고 연주할 때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그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그냥 남들처럼 숨 쉬고 밥 먹고 자고 그냥저냥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사는지와 같은 깊은 내면의 질문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무대 위의 내 모습만 사랑하는 것인가, 무대 위에 매일 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기회에 좌절하게 되면 어떡하나, 나는 음악 그 본질을 사랑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 앞에서 멋있는 퍼포머로서 내 모습만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해 자주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 있던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공연 있을 때만 연습실에 가고 레슨이 있을 때만 레슨 준비를 하고 음악적인 능력을 현상 유지만 했기 때문이다. 더 나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적극적으로 공연 및 오디션 기회를 물색하고 커리어를 쌓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했다. 진짜 내가 온전히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멋지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유튜브 시작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영상을 업로드하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브런치 글을 쓰고, 수많은 영감을 받으며 일상을 예술적으로 잘 살아간다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제대로 느낀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물론 그동안 메모장에 적힌 유학에서 얻고 싶은 것 리스트, 일상 또는 음악적으로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를 자주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도 너무 함축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음악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술 마시려 온 것도, 이런저런 도시 여행 하려고 온 것도, 단순히 석사 학위가 필요해서도 아닌,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정말 제대로 음악 하기 위해 온 것이다.


목록에 적힌 캠퍼스 라이프, 친한 친구 및 선생님, 유럽 여행, 영국 영어, 공연 및 오디션 기회, 학위 그 자체, 콘서트 레퍼토리 발달, 합주 경험 등은 부수적인 것일 뿐이었다. 한국에 돌아갈 때, '나 진짜 제대로 음악하고 왔다'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오늘 영국에 온 지 정확히 50일 만에 깨달았다.


음악은 나를 온갖 삶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준다. 그러나 병 주고 약 주고의 무한반복이다. 감수성 풍부한 예술가적 기질이 날 아프게 하지만 그 재능이 또 나를 살게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지도에서 영국을 다시 보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내가 진짜 영국에 있는 것이 맞나 무덤덤하게 느껴졌다면 비틀스, 오아시스, 라디오헤드, 콜드플레이의 나라 영국으로 느껴진다.


잘 왔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은 내 음악을 필요로 하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