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이야기여서 책에서도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영국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옆방 소음이었다. 옆옆방 친구와 내가 돌아가며 수차례 방문 앞에 쪽지 붙이기, 시큐 부르기, 데스크에 말하기, 이메일 보내기를 했다. 한 번 경고가 들어가면 대마 냄새는 좀 안 났다가, 다시 또 나고, 무한 반복이었다. 옆옆방 친구는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고있음에도, 역시 아시아인인지라 나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다. 나에게 문자로는 고통 호소를 했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친구도 포기했는지 행동하지 않아서 한 시큐로부터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하기도 했다.
시큐는 본인이 힘이 없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학교에 얘기해 보라 했다. 학교 학생 생활 지원 센터 얘기했더니 사설 기숙사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하고, 본사에 찔러보라는 조언만 얻었다. 본사에 그동안 기숙사와 나눴던 모든 메일을 PDF 따서 보냈더니, 알아본다고 했으나 당연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찰에 신고도 하려고 지역 담당 부서에 민원도 넣었었다.
소리가 언제 들리는지 시간을 전부 적어서, 12시부터 1시 사이엔 거의 디폴트고 저녁 7-8시도 자주 난다는 걸 깨달았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건 당장 방에서 나가야 하는 신호라서, 옷차림이 간편해지는 봄부터는 10초 안에 방에서 나가게 되었다. 그러니 하루 시작이 저 새X 음악 트는 시간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더 뭉그적거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낮에는 상황이 훨씬 나았다. 어차피 연습실 갈 거였고, 덕분에 부지런히 생활하게 된다며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외국'이라는 특성상, 일단 나가서 걷기만 해도 좋아했다.
하지만 문제는 밤이었다. 오후에 나갔다 왔으면, 저녁에는 온전히 쉬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보다 밖에 나가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다. 저녁엔 기숙사 2층 공용 공간을 주로 이용했는데, 진짜 방에서 쉬고 싶어서 미칠 때가 너무 많았다. 공용 공간이라고 조용한 것도 아니었다. 거기도 시끄러울 때면, 밀크티집에 갔다가, 밀크티집은 9시 반에 문을 닫아서 다시 공용 공간으로 오고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아파서 방에서 못 나가겠는데 시끄러울 때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서러웠던 기억이 있다. 6월에 한국에 돌아온 이유가 그거였다. 아무리 ADHD가 충동성을 디폴트로 가지고 있다 한들, 애초에 그 지뢰가 눌리지 않으면 충동성이 발현되지 않는다. 미친 듯이 아픈데 옆방 소음이 해결되지 않으니, 당장 짐 싸서 한국 들어오고 싶을 만했다.
안타까운 건, 당시 돈을 몇백만원 날리더라도 다른 방을 구했으면 되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한국 돌아와도 돈이 그거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나갔기 때문이다. 그랬으면 그 여름뿐만 아니라, 작년 하반기 전체 운이 달라졌을 것이다. 6월에 그렇게 돌아왔다는 사실에 너무 후회하고 우울해했다. 왜냐하면 분명 영국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 선택으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한국에 와서도 집 상황이 나빴다. 우여곡절 끝에 혼자 살 집이 구해졌는데, 거기마저도 층간 소음으로 한 달도 되지 않아 못 살겠다고 나왔다. 집을 구할 때까지 이 집 저 집 단기임대로 살았던 시기도 정말 힘들었는데, 구한 집마저도 나와야 했으니 작년 하반기는 인생 최악의 운이었다. 그 층간 소음도, 일반 가정집에서 내는 소리가 아니라, 영업장에서 나던 소리여서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지금은 내 방에 잘 때를 제외하고는 들어가질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나 침대에서 조금은 뭉그적 거리다가 일어나고 싶기 마련인데, 눈 뜬 즉시 나와야 된다. 침대에 잠깐이라도 있다가는 소리에 시끄럽다며 인상 찌푸리며 거실로 나온다. 근래엔 새벽 5, 6시에 자꾸 일찍 눈이 떠져서 상황이 더 안 좋다. 시간과 상관없이 눈이 떠졌으면 거실로 나와야 된다. 새벽에 깨면 다시 잠에 들기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금처럼 하루 일과는 모두 거실과 동생 방에서 보낸다. 그나마 거실은 조용하게 느껴서 다행이다. 하지만 간혹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가기 위해, 피아노를 치기 위해, 타로를 보기 위해 방에 머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하다못해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러도 중간중간 들리는 소음 때문에 짜증 나서 못해먹겠다. 옷만 챙겨서 바로 나가는 그 15초도 방에 들어가기가 싫다. 내 방에 들어갈 때마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이니 얼마나 손해인가.
하지만 내 방 말고는 잘 곳이 없어서 밤에는 방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졸릴 때까지 거실이나 동생 방에 있다가 들어온다. 동생이 늦게 들어오면 동생 침대에 누워있을 수라도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소파는 불편하다. 게다가 동생이 밤에 방에서 통화라도하면, 그것도 시끄러워서 거실에 못 있는다.
한 세달 전에는, 내가 내 방이 너무 시끄럽고 짜증이 나서, 내 방에서 혼자 그냥 분풀이로 물건을 던졌는데, 동생이 갑자기 문 열고 들어와서 나한테 물건을 던져서 내 다리에 멍든 적도 있다. 내 방에서 혼자 승질 내고 있던 걸, 갑자기 들어와서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게 말이 되는가. 과거 가족 구성원들의 폭력 행사를 떠올리면 도저히 같이 살 수가 없는 가족인데, 뭐 방법이 없다.
감각이 과민하다는 건, 남들처럼 TV 소리로 다른 소음을 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용'하지 않으면 미쳐버린다. 청각만 예민하겠나. 촉각도 마찬가지다. 잘 때 귀마개라든가 뭔가 쓰고 잔다는 것도 불가하다. 영국에 있을 때도 다 사봤는데, 버려졌다.
몇 달 전에는, 지금은 안 들리는 소리들도 들렸다. 방에서는 지금의 엘리베이터 도르래 소리가 아니라, 무슨 백색소음처럼 매 초마다 계속되는 것처럼 느꼈다. 그건 정말 그동안 소음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환청처럼 들렸던 것이었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헤드폰을 쓰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 있는데, 난 그게 흙 파먹는 것처럼 싫다. 이미 영국 기숙사에서 '도저히 컨디션이 안 좋아서 공용 공간도 못 가겠는데 시끄러울 때' 헤드폰을 쓰고 있었는데, 소음이 헤드폰도 뚫을 정도였다. 당시 내 방에서 해드폰 쓰고 있는 걸 너무 싫어해서, 음악 소리가 꺼졌나 안 꺼졌나 계속 꼈다 뺐다 하면서 확인했다. 이제 좀 끈 거 같아서 빼면 들리고, 빼면 들리던 노이로제가 있다. '이러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냥 계속 쓰고 있자'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생각하면 ADHD라) 꼈다 뺐다를 반복하느라 굉장히 힘들어했다.
2023년 9월 말부터 이렇게 소음에 시달려온 경험이 반복되어 왔다. 몇 달 전에는, 매일 집에 아침 8-9시마다 러닝머신 뛰는 소리가 5분씩 들렸다. 하루도 안 빼고 매일 들렸다. 엄마는 5분인데 그냥 살아야지, 했지만 나는 그걸 엘리베이터에 쪽지를 붙여서 해결했다. 그건 사람이 내는 층간소음이기 때문에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발동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 쌓아온 그 '잘못된 것을 포기하지 않고 족치는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해도 안 될 것 같은 것'에는 '학습된 무기력'이 쌓였다. 과거 기숙사도, 사람이 지속적인 대마초 흡연으로 쫓겨나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인데 내가 포기하지 않고 민원 넣느라 지치기만 했다.
그래서 이번엔 방음을 도와주는 장치를 시도해보려 한다. 베개 머리만 방음이 되도록 가림막을 설치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그게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방음 효과가 있기는 할지 미지수다.
적어도 새로운 살 곳을 구하는 것보다는 낫다. 작년 여름에 겪었던 '집 구하기 노이로제'도 아직 심해서, 돈을 다 줄테니까 영국에 살 집을 구하라 한다해도 귀찮다. 누가 혼자 살만한 멋진 집을 갖다주지 않는 이상, 집을 구할 여력은 더욱 소진했다.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심지어 인테리어 공사 소음도 난다. 영국은 인테리어 공사 따위 없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