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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뿐인 사이

by 이가연

나는 계속 먼저 연락을 하는데, 상대방은 한 번도 먼저 연락이 안 올 때, 인스타는 나는 계속 재밌는 릴스를 보내는데, 상대방은 반응도 없을 때, 이런 경우가 몇 번이고 반복되어야 내가 지쳐서 그만둔다. 늘 사람을 포기 못한 이유는, 분명 처음에는 상대방도 나와 마음의 크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서로 비슷했던 시기에 익숙해서, 유효 기간이 다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매번 어렵다. 너무 좋았던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그 때마다 감당하기 큰 상처다.


오늘은 나의 영국인 친구 제이드 이야기다. 이 친구는 영국에 있을 때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만나는 것이 당연했다. 한국에 온 지금도, 이따금씩 영국에 갈 때면 친구가 나를 위해서 주말 시간을 비워두고, 평일도 될 수 있다면 만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아마 그 친구가 한국에 와서 부산, 제주도에 간다고 해도 똑같이 따라다닐 것이다.


아무리 친했다고 해도, 장거리 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마음의 크기가 조금씩 어긋나면, 가뜩이나 직접 만나지도 못하기 때문에 사이가 멀어져, 어쩌다 영국 갈 때만 만나는 사이가 될 수도 있었다. 거의 모든 국제 학생들이, 학교 다니는 동안 사귀었던 친구와 지속적으로 같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별한 경우라고 자부한다. (물론 내가 작년 12월, 올해 5월, 그리고 9월에도 갈 만큼 자주 가는 것도 한몫한다. 이 친구 때문이다. 5월에도 9월에도 오빠는 베트남에 있어서 못 만난다.)


우리는 똑같이 노력한다. 인스타에 영국이나 한국 관련된 흥미로운 게시글이 보이면 친구에게 공유하는 게 습관 되어있다. 그러면 친구도 공감이든 코멘트를 달아준다. 무시해서 상처받은 기억이 없다. 얼마 전부터는 주말마다 영상 통화를 하기로 했다. 지금은 남자친구 집이라 전화할 곳이 없어 미안하다며, 잘 시간까지 얼마 남았냐고 묻고는 어제도 1시간 반 정도 통화했다. 특별히 시간을 정해두지 않아도, 서로가 주말이 되면 지금 되냐고 묻는다.


'거절 민감성'이 있는 사람이 나뿐이랴. 테일러 스위프트도 똑같다. 생각해 보니, 한국인들은 미안하다는 말을 잘 안 해서 거절 민감성이 더 올라왔다. '그날은 시간이 안 되어 미안하다. 다음 주는 어떠냐'하고 하면 누가 상처받나. 다른 날짜 제안도 없고 '그날은 시간이 안 된다.'만 수차례 받으니 눌린 것이다. 반면, 제이드는 '별로 미안한 일도 아닌데' 영국인 특성상 "sorry"가 입에 붙어서, 나의 '거절 민감성'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내가 영국에 자주 가기 때문에, 그 친구가 "sorry"를 자주 하기 때문에, 그 친구와 내가 서로 주말에 통화할 시간이 맞기 때문에, 전부 '친구 사이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맞다. 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똑같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이 친구도 누구랑 같이 있다고 하면 남자친구 아니면 가족이다. 나는 남자친구가 없으니 가족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베스트 프렌드고, 다른 친구가 거의 없다. 언급이 거의 안 된다. 이쯤 되면 서로가 서로밖에 없어야 마음의 크기가 비슷할 수 있는 거 같다.


이 친구가 9월 영국에 없을 거라고 하면, 비행기 미루고 싶다. (그럴 일이 없으니 괜찮다.) 친구랑 펍에 가서 감자튀김과 맥주 먹는 게 제일 하고 싶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9년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만 물어보고, 나만 제안하고, 나만 연락하는데 상처받은 지도 9년이다. 그래서 이젠 오빠와 제이드를 제외하고 곁에 아무도 없다. 토할 거 같은 걸 참아가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기존 문제가 질리도록 반복되어 내적 구토만 더 유발되었다. 똑같이 서로가 서로밖에 만날 사람 없고, 일상에서 소중한 사이가, 서울에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사이가 아니면 나는 곁에 둘 수가 없을 거 같다.


그러기 전까진, 영원히 영국에 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밖에서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할머니 밖에 없고, 새로운 사람은 토할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더 이상 일주일에 5번 영국이 꿈에 나올 정도로 갈망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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