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사랑받고 싶던 마음

by 이가연

사랑받고 싶어 하던 마음이 사라졌다. 나를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해졌다.


예전엔 '나를 부담스러워하면 어떡하지.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을 안고 살았다. 그런데 ADHD 진단 이후로는, 이런 내 모습이 싫다면 방법이 없다는 확신이 섰다. 남들과 다르게,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흔히 여자들이 남자에게 관심을 표현할 때, 속도와 수위를 조절해 가며 이성적으로 자제할 수가 있다. 화가 나도, 상사에게 욕하지 않을 수 있다. 난 말로 표현하는 욕구가 생리적 욕구 수준이다. 살면서 정말 많이 참았던 건데, 그 수준이 남들이 보기에 안 참은 것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것처럼 보일 거 같다.


누군가의 앞에서 그렇게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해했다는 거 자체가, 본모습을 온전히 다 드러내지 못했다는 뜻이다. 마스킹이다. 진단받기 전의 나는, 내가 왜 이런지 몰랐으니 일반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기 위해서 마스킹을 해야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행동했는데도, 부담스럽고 싫으면 애초에 만나면 안 될 인연이었다. '넌 아주 정상. 전혀 다르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이라고 말하는 오빠나 제이드와 같은 사람만 대화하고 싶다. 더 이상 불안에 떨고, 정상인 척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다.


RSD라고 하는 '거절 민감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내가 이 '거절 민감성'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달으니, 그동안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 사람에게 거의 열 번을 만나자고 말해서 거절당한 경험이, 살면서 좀 된다. 몇 년에 걸쳐 그랬던 사람, 몇 달만 그랬던 사람, 참 다양하게 많았는데 거절당하는 게 그냥 일상이었다. 이걸 아무리 알아도, 도저히 적용이 안 되어서 이번 달에도 그렇게 상처받아서 연락처를 삭제한 사람이 있다.


알아도 막을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프고 힘든 일인지 모른다. 오빠나 제이드를 생각해 보면, 애초에 '거절'이라고 느낄 만한 상황에 놓이지 않게 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 있을 때 제이드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당연하게 만나서 저녁 먹고 펍에 갔다. 그래서 앞으로는 '거절 민감성' 발현 자체가 안 되게 하는 사람만 만날 것이다.


20대 내내, 일이든 친구든 이성이든, 참 선택받고 싶어 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느라 애썼다. 이성을 잃는다는 느낌, 분노 발작할 거 같은 느낌, 감정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그 느낌에 평생 시달렸다. 어차피 나는 나와 잘 맞는 극소수와 어울려야 최대한 발작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젠 내가 극소수하고만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태어났다는 것이 받아들여졌다. 나를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나도 상대에게 감정 조절이 되는 사람도 극소수지만 존재한다. 그리고 나만 그들이 특별하고 좋은 게 아니라, 그들에게도 내가 이 팍팍한 세상에 빛과 소금일 거라 믿는다. 그런 관계만 맺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아니야!! 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라고 욕심부리면, 계속 그렇게 힘들게 감정 조절 안 되며 살게 된다. 비 ADHD인들은, 조금 안 맞더라도 친한 친구가 아닌 친구, 지인 테두리 안에 둘 수 있다. 내가 100으로 느낄 걸, 1로 느끼기 때문이다. '아니야. 나만 100으로 느끼는 걸 거야. 이건 1짜리 문제인데, 내가 100으로 느끼니까 문제인 거야. 내가 문제야.'로 의식이 흘러버리면 일찍 죽는다. 내가 100으로 느꼈으면, 100인 문제다.


좀 있으면 28살이 되는데, 이걸 이제라도 깨달았다는 게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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