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 전부터 매우 귀찮아했다. 공연을 앞두고도 설레하지 않았다. 그러면 일상 속 짜증을 견딜 수 있는 역치가 거의 사라진다.
지금 여수에서는 애초에 오기 싫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짜증 날 수 있다. 초코 우유를 샀는데 한 입 먹고 버려야 되고, 호텔은 분명 조용한 방 달라고 했는데 왜 저층을 준 건지 도로 소리가 시끄럽다. 다시 가서 물어보니 하필 만실이라고 한다. 여행으로 영국이었으면 이 정도로 짜증 안 냈다. 그냥 영국에 다시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기 때문이다.
한 번 짜증, 화의 기분에 빠지면 도무지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주 좋아하는 일, 사람, 장소만 선택하는 게 답이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 발생 자체를 줄여야 한다. 이는 정신과 의사샘도 하신 말씀이다. 솔직히 스트레스를 가능한 안 받는 게 답이라고. 남들이 1로 느끼는 걸, 100으로 느낀다는데 그걸 '100으로 느끼지 마. 10으로 느껴!'할 순 없다. 할 수 있다면 나도 남들과 똑같고 싶다.
이럴 땐 주변에서 누군가가 T처럼 굴어줘야 한다. '아이고 그랬구나' 공감은 주의력 전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방금도 엄마에게 "아아아아아" 하며 전화했는데, 수영복을 안 가져왔으면 사서 입으라고 했다. 당연한 건데, 수영복을 안 가져왔다는 사실에만 꽂혀있기 때문이다.
너는 좀 T처럼 해줘야 된다던 쌍노무시키가 또 생각 났다. 언제는 생각 안 했나. 눈 떠서 잘 때까지 백그라운드에 돌아가는 건 여전하다. 1년 7개월 동안 밥을 먹든, 누워 있든, 앉아 있든, 배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뭘 하든 항상 '나 싫다고 간 사람'을 생각하면 ADHD 없는 사람도 정신병 올 거 같다. 봉사 활동하는 그 2시간만 자유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생각이 매여있다.
작년 여름부터 1년째 우울증이 ON/OFF를 반복했던 게 아니라, 상사병 같다. 기차 타고 오면서도 왜 전라도에서 경상도 가는 기차는 없냐며 시무룩했다. 어제는 사진사님에게 고향 마산 언제 가시냐며 가고 싶은데 핑계가 없다고 했다.
상대는 싫었다는데, 힘들었다는데, 얼마나 어떻게 다르게 쓰였을 서로의 기억인지도 모르면서, 이런 내가 가끔은 너무 죽일만큼 싫다. '전생의 나를 닮아서 그렇구나'로도 이해가 안 된다. 왜 울고 있지.
다음 달에 최면 치료를 받기로 했다. 유명한지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다. 일반인은 전생 체험도 평생 한 번 할까 말까인데, 최면을 한 번 더 할 예정이다. 이번엔 목적이 다르다. 정확히 작년 2월 초의 그 기억을 꺼내서, 과거 미화된 걸 바로잡을 거다. 나한테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떠올릴 수 있다... '나를 진심으로 싫어했다' 체감하고 엄청 힘들 수 있겠지만, 이렇게는 더 못 살겠다. 살면서 별별 안 해본 방법이 없어서, 최면 치료는 또 다른 희망이다.
올해 1월 ADHD 진단을 받았을 때, '우울증만 안 오게 관리하면 잘 살아볼 수 있을 텐데' 싶었다. ADHD는 장점이 있지만, 우울증은 장점이 없다.
우울하면 슬픈 노래를 슬프게 잘 부를 거 같은가. 아니다. 아예 집중을 못 하고, 그냥 아무것도 부르기 싫다.
이래서 '설레지 않는 일은 취소하라'라고 가끔씩 상기시켜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