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일기 (3) 잘 마쳤으면 성공이다

by 이가연

50분 공연이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석사 논문 대신에 50분 공연을 해야 했다. 그걸 부러워하는 사람들 보고, "너가 혼자 50분 노래할래?" 하면 그냥 논문 쓰겠다고 했다.

쉬운 일은 아니라 했다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노래하는 중간에 목이 좀 아프고, 끝나고 피곤할 뿐이다. 가끔 "안 떨리세요?" 하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어지간한 공연으로 안 떨린다. 오디션 심사 당할 때는 떨린다.

노래를 특별히 잘 부르기도, 못 부르기도 어렵다. 가사를 잊을 순 있다. 그래서 공연 전날,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노래를 순서대로 엠알을 틀어놓고 불러본다. 실제 공연처럼 멘트도 한다. 이때 그냥 립싱크로 하고 지나가는 곡들도 있다. (그래선 안 됐다. 이번 1집 노래들은 더 불러봤어야 했다.)

공연 시작하는 거나, 식당에서 메뉴 주문하려고 할 때나 비슷하다. 첫 곡은 거의 항상 인어공주 노래로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 앞, 영국 왕실 행사에서 불러도 안 떨릴 곡이다.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부르기 좋았다. 전혀 덥다고 느끼지 않았다.


'사랑해', '아직, 너를', '그런 너라도'. 이번 앨범에서 '있지' 빼고 다 불렀다. '있지'는 야외에서 부르기 너무 쳐지는 곡이다. '사랑해'도 괜찮나 싶었는데, 이 노랜 좀 부르고 싶었다.


'아직, 너를'은 오늘 첫 라이브였다. 망했다.

노래하는 내내, 1시 방향으로 보름달이 보였다. 보름달이 보였다가, 구름에 가려졌다가, 다시 보였다.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그 보름달을 보며 '진짜 제발...'이란 생각이 들어서 감정 과잉이 일었나 보다.


영상 모니터링을 하니, 고음 부를 때 마이크를 살짝 떼야하는 저 말도 안 되는 기본도 잊고, 마지막 후렴 음정도 말도 안 되게 나갔다. '그게 나를 아프게 해', 그래 아프게 하는 건 알겠는데 노래는 똑바로 불러야지... 물론 누군가에겐 충분히 가슴에 와닿았을 수 있다.


이게 연습하면 되는 부분인지,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 좋아할 때까지 라이브를 안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대신 '그런 너라도'는 잘 불렀다. 정말 그 잠깐의 인연으로, 앨범 내, 공연 해, 나 많이 우스울까 아니면 그래도 멋져 보일까.



공연이 저녁 9시 반에 끝났는데 유튜브와 브런치까지 팍팍 올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다니,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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